주기도문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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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6:9)

 

   지난주,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의 중심은 하늘에 계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시작 문구인 하늘에 계신은 그리 간단한 뜻을 가진 말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단어는 굉장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1) 하나님의 초월성과 2) 하나님의 거룩성, 그리고 3) 하나님의 창조성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인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문구는 우리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이 단어에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깊은 의미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앞으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할 때마다 이러한 설렘과 가슴 벅참을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누리게 된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었더니 이 정도의 큰 복이 내게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에요. 이런 질문에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같이 넓은 집, 많은 재산, 승진, 자녀들의 부유함 등을 말해요. 조금 머쓱하면 건강정도를 대답하죠. 그런데 여러분! 이 것은 그저 1차원에 지나지 않는 대답에 불과해요. 제가 대신 답해드릴까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복을 받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대답하니까 왠지 모를 허탈감이 몰려오나요? ~ 그럼, 한번 상황을 가정해보죠.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큰 백화점에 여러분이 있다고 해봅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제 여러분이 묻습니다. “~ 혹시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여러분!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으세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겠죠. 또 어떤 사람은 맞장구를 치며 나도 그렇다고 하며 가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때론 여러분의 면상에 침을 뱉을 것처럼, 혹은 욕 한 사발을 퍼붓고 갈 것입니다. “당신 미쳤어~~ 정신 차리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하나님이 밥 먹여 주냐등등. 그래요~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입니다라는 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정확히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너무 자연스럽게 하잖아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그런데도 감사할 줄 몰라요. 특권인 줄도 몰라요.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줄도 몰라요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아버지라는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래요! 여러분~ 말 그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하나님 아버지를 너무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유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큰일 날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의 관점으로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부를 수 없었어요. 구약과 신약이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구약을 보면,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곳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적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지요. 4: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2: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이렇게 구약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 우리처럼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아버지라 부르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특이한 형태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이름입니다. (: 다윗의 형들 중 엘리압’-엘리(나의 하나님),(아버지) / 사울의 아버지 아비엘‘-아비(나의 아버지),(하나님) /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여호와),(아버지) / 히스기야의 어머니 아비야’-아비(나의 아버지),(여호와)) 이런 이름들이 가리키고자 했던 뜻은 하나인데요. 그것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입니다. 아무리 이렇게 이름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도 문제는, 개인적인 기도나 공적인 예배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직접 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들, 유대인들(제자들-유대인) 앞에서 하나님을 누구라고 부릅니까? ‘아버지라고 합니다. 문자적으로 그렇지 이 문장을 문법과 억양 등의 상황으로 재해석하면 예수님은 지금 어린아이의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아빠라고 가장 친근하게 부르고 있는 장면이에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고, 유대인들이었던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라고 한 것은 가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유대 문헌에는 그런 예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독일의 신학자 요야킴 예레미야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후한 유대 문서 어느 곳에서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예가 없다고 말합니다. ‘거룩한 하나님, 초월의 하나님에 대한 큰 경외심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친근하게 부를 수 없었습니다. 유대 신학의 틀 속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요, 하나님께 불경(不敬)’을 저지르는 행위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것은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곳이 무려 170여회나 나옵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요.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주기도의 가장 첫 시작단어가 사실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에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어요. 1)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독특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이라는 의미! 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는 것,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첫마디에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얻게 된 가장 큰 복인 거에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기도, 중심 기도의 첫마디를 아버지로 삼은 것은 이 기도를 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서의 분명한 자기 이해를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라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이 주기도를 고백할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정체성이 없는 주기도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 그저 주문에 가까운 아무 의미 없는 흥얼거림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요?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데요. 먼저, 유대인들이 흔히 가졌던 하나님의 모습은, ‘전능하심 / 위대하심 / 인간에게 분노하시는 분 등으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위해 열심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사를 열심히 드림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당히 객관적인 관계로 보여지는 장면들이죠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어린아이가 사용하는 화법을 사용하시는데! 본문은 아버지이지만, ‘아빠라고 부르는 어린아이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14:36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아빠 아버지는 예수님만 사용하신 게 아니에요.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4:6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여기서 아빠는 아람어로 아버지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뼛속까지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 아빠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것도 놀라운 것이지요. 어쨌든, 우리가 아버지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이 더욱 친근한 호칭인 것처럼 유대 사회에서도 아주 친밀한 호칭입니다. 결국, 이런 가르침에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멀리 피안의 세계에 계신 분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아빠와 같은 친근한 분이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놀랍기만 하지요!

  그래서 주님은 이러한 친근한 하나님 아버지의 이미지를 눅 15(11-32)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선명하게 알려주십니다. 15장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정리해보면, 1) 분깃을 나누어 주는 아버지(12), 2) 기다리는 아버지(20), 3)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20), 4) 제일 좋은 것으로 다시 회복시키시는 아버지(22), 5)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버지(징계하지 않으시는 아버지)-32/ 그래요!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사랑으로 품으시는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코로나 19로 많이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긍휼을 베푸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습관을 따르면 왠지 나의 아버지라고 써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주기도문의 특징은 나의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입니다. 왜요? 흔히 우리의 기도가 개인적인 기도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주기도는 우리라는 말이 계속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의 죄를”,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등등.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나의라는 말 대신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하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당시 바리새인들의 기도 때문! 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여기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의 특징은 바로 만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만의 기도는 이방인을 무시하거나 혹은 유대인들 중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한 교만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교만으로 기도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만을 위한 개인적인 교만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기독교 신앙은 함께하는신앙이기 때문! 그래요! 기독교 신앙에서 함께함은 아주 중요합니다. ‘함께모여 떡을 떼고, ‘서로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큰 특징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따로그러나 같이를 추구한다”!!! 무슨 말인가요? 구원은 일대일의 사건이에요. 그래서 기도는 홀로 골방에 들어가서 나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골방 기도에서도 우리는 우리 아버지를 불러야 합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그 기도가 끝나면 나가서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온전한 신앙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끼리만 있어도 안 되지만 혼자만 있어도 안 됩니다. 그래서 같이안에서 따로를 추구하며 따로안에서 같이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너의 하나님 아버지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결국, 우리 모두의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따로그러나 결국은 함께, 같이라는 원칙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신앙생활하는 여러분이 되셔서, 참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잃지 않는 품격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여러분의 모든 삶의 모습이 하나님께만 영광이요, 사람들에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참으로 멋진 신답인들로 살아가시기를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