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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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마 6:9)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주기도문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인데요. 원래 이름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라고 해야 한다고 지난 주에 나누었습니다. 성도라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모범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참으로 중요한 기도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하는 이 말이 맞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모든 인간은 기도하는 존재이다 어때요? 이 말이 맞을까요? 이 명제는 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인간은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다만,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허무한 것들, 다시 말해서, 피조물들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허무하지 않은 진정한 진리와 참 빛이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들, 곧 우상숭배를 일삼은 나라들이 자신들의 우상에게 기도하는데 그 우상이 무엇인가요? 왕하 19:18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내용인데요. 당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들이 자신의 신이라고 세운 것이 고작 나무, 과 같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거에요.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보여주는 말입니다그런데 그렇게 빛이신 하나님께 우리는 기도하지만, 정작 우리 안에 있는 타락성과 연약함과 나약함 때문에 언제나 올바른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모범적인 기도가 있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모범적인 기도문이라고 하면서 이 기도문으로만 잘 기도해도 아주 훌륭한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 기도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번 주기도문 강해를 통해 그동안 소홀히 하고, 평가 절하했던 우리의 모습을 재점검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토록 중요한 기도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주기도문은 크게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여섯 개로 구성된 청원부분,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송영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누면 네 부분인데요. 여섯 개로 구성된 청원을 부분을 세 개씩 두 묶음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그것은 처음 세 개의 청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와 관계된 부분이고, 다음 세 개의 청원은 우리라는 주어로 시작되는 청원들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이라는 부분인데요. 이것은 기도의 대상, 곧 우리들이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정의하는 부분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죠. 서두에서 나눈 것처럼, 비그리스도인들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것을 부르며 그것을 향해 기도하겠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벌써부터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죠

  두 번째는, 첫 세 개의 청원부분인데요. 이 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래요! 이것이 주기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럼에도 오늘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니요. 어쩌면 이 부분은 아예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청원만 길게 늘어놓다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이 부분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그만큼 이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님께서도 강조하고 있으신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우리로 시작되는 청원 기도의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시작된 기도는 우리에게 우리가 구해야 할 것들을 알게 하는, 바로 우리의 삶에서의 간구가 담겨있는 부분입니다

  끝으로, 송영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부분이지요. 원래 유대교의 기도 관행에 따르면 하나님을 축복하는 송영없이 끝나는 기도는 없습니다. 지난 주 여러분에게 잠깐 소개해드렸던 카디쉬 기도문만 보더라도 마지막 부분에 송영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이 괄호로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에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 이유에 대해 여러분의 성경 하단을 보면, “고대 사본에, 이 괄호 내 구절이 없음.”이라고 되어 있을 거에요. 이 부분은 나중에 깊이 있게 살펴볼 것이니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언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큰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가장 먼저 우리가 다룰 것은 기도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하는 부분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다시 한번 볼까요?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여러분! 기도하면서 누구를 부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그래요! 성도인 우리가 하는 기도는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입니다. (크게 한번 외쳐보죠. 누구라구요?)

  미국의 제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스 대통령이 어느 날 보좌관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평가받던 빌 모이어가 백악관의 대변인이었는데 식사 시간이 되자 존슨 대통령이 빌 모이어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함께 모인 보좌관들이 일제히 눈을 감자, 빌 모이어가 식사기도를 하는데 그의 기도소리가 너무 작았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다혈질로 유명한 존슨 대통령이 기도 중간에 소리를 쳤습니다. “~~ 더 크게 기도해요! 잘 안 들려요그러자 빌 모이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해요. “각하, 저는 각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하는, 하나님을 향해 하는 기도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기도라고 하면서 하는 것을 보면, 많은 부분에 있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이기보다는 사람을 향한 기도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 생활에 있어 이런 모습들이 있다면 우리는 회개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늘에 계신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속성, 또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라는 부분에서 사랑, 정의, 진리, 빛 등등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하나님의 속성, 곧 제자로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기억하면서 해야 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말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유대 관습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것이 유대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대 관습상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때는 반드시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이다라는 식의 자신의 신앙 고백과 자신의 바라는 것을 표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당시의 유대 관습이 바로 주기도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거기에는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자신의 신앙 고백과 소망이 꼭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이라는 것은 기도를 하는 이의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이후 여러분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진정한 여러분의 신앙 고백을 담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하늘이라는 단어입니다. 영어에서 하늘을 의미하는 단어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sky-그야말로 창공입니다. 2) heaven-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늘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의 하늘sky가 아니라 heaven인데, 어리석은 이들은 이 하늘을 sky로 오해하곤 합니다. 대표적인 예)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데요. 19614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만에 지구의 상공을 일주한 우주 비행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지구의 상공을 일주하고 귀환했는데, 그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 가 보니 하나님은 안 계시고 왕국도 없더라그런데 당시 그의 이 말이 크게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밝혀진 새로운 사실은 그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스탈린 정권시절, 일부러 서방 세계의 보편적인 신앙이었던 하나님 신앙을 깨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늘에 가 보았지요.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루이 암스트롱도 다녀왔고, 그후로도 많은 이들이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간 곳은 어디인가요? sky인가요? heaven?인가요? 맞아요! 바로 ‘sky’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하늘은 ‘sky’가 아니라 ‘heaven’을 말합니다. 그러면 ‘heaven’이란 어떤 곳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가 하늘에계시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어떤 다른 장소에 계신다기보다는 우리와 다른 차원에 계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신적인 영역이 바로 ‘heaven’입니다. 그래요! ‘heaven’이라는 곳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공 그 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을 말합니다. 이 의미를 잘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대하 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차이가 하늘에 계신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신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구절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heaven’은 바로 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5:2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전도서의 이 말씀도 우리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영역에 있으시고 인간은 그의 피조세계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하면서 창공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또한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나눈 것처럼, 하나님을 수식하는 많은 말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하늘에 계신을 강조하실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사랑, 정의 인자등 이 외의 여러 단어가 있겠지만, 가만히 이 단어들을 보면 부족하지만 피조물인 인간이 흉내 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그 어떤 피조물도 따라 할 수도, 흉내조차 낼 수도 없는 모습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먼저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강조하는 말씀인 것이지요. 달리 말하자면, 우리 하나님은 광대하시며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늘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곳입니다. 결국, 이곳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질적인 거룩함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창조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계신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우리를 초월해 계시지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까?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그래요! 통회하는 심령, 겸손한 마음을 가진 성도는 하늘에 계신이라는 이 한 단어만으로도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특권이니까요!!!!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이렇게 외쳐 봅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십니다!’ 이 믿음의 고백으로 골리앗과 같은 세상을 향해 다윗과 같은 담대함으로 나아가 놋 문을 쳐부수시고, 쇠 빗장을 꺾으시는 전능하신 주님과의 동행으로 매일의 삶에서 승리하시며 형통과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맛보는 거룩한 날을 이루시기를 하늘에 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