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강해
십계명 강해 8 "내 삶의 거룩!" (제 7계명)
2022.08.20 17:22
사랑하는 여러분! 한 주간도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셨는지요? 생각지 않게 많은 비가 내려 때 아닌 2차 장마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낸 분들도 있을 텐데요. 우리 주님의 자비와 위로가 함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교회학교 다닐 때 경험했던 일입니다. 십계명을 외우면 상품을 준다고 하여 십계명을 외웠습니다. 그런데 다른 계명들은 그 뜻을 알겠는데 오늘 본문의 일곱 번째 계명의 키워드인 ‘간음’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목사님께서 설교하셨던 내용이 기억이 납니다. 여기서 ‘간음’이란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것이 ‘간음’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이 진짜 간음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모양새나 이 남자, 저 여자 만나면서 문란한 삶을 사는 것은 도찐 개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간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사전에서 “간음이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성관계를 맺음.” 그러니까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또는 부부가 아닌 두 사람이) 성관계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간음’이란 말과 ‘음란’이라는 말, 그리고 ‘음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곱 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간음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혼한 남자가 이미 결혼한 여자, 즉 남의 아내와 성관계를 갖는 것이 ‘간음’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말씀이 레위기 20장 10절인데요. 함께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 말씀을 토대로 보면, 간음은 “남의 아내를 탐하여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본문도 간음의 범위를 알게 합니다. 신 22:23~24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 22:28~29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이상의 두 본문은 동일한 성적인 범죄이지만 적용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앞의 경우, 그러니까 여성이 약혼한 경우엔, 다른 사람의 아내로 간주하여 이런 경우엔 ‘간음’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뒤의 경우, 그러니까 약혼하지 않은 여성의 경우엔, 다른 사람의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간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엔 제 7계명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배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음’은 ‘남의 아내를 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간음’이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4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①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잠 6:32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이처럼 성경에서는 동성이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이웃집 사람이 되었든, 창녀가 되었든,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육체적 관계는 모두 ‘간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시대가 아무리 개방적이고 방송이나 영화 등 매체에서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한다고 하더라도, 결혼 전에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육체적 모든 관계는 적절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서는 간음한 사람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의 참된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간음하지 말라는 것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간음하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면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내 삶에 담아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 최종적인 목표는 레위기 19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거룩함을 내 삶에 이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룩’ 즉 ‘정결’해야 함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며 방법 중에 중요한 것이 간음하지 않는 것입니다.
② 가정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히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살전 4:3~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2016년 2월, 헌법재판소는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형벌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다”라는 이유로 1953년부터 62년간 이어온 간통죄를 폐지했습니다. 간통죄란 남편 혹은 아내가 부부가 아닌 다른 이성을 만나서 성관계를 가졌을 때, 그것을 법으로 처벌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노르웨이는 1927년에, 덴마크는 1930년에,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1937년에, 독일은 1969년에, 프랑스는 1975년에 간통죄를 폐지했고,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도 각각 1989년과 1996년에 이를 비범죄화 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감독 홍상수와 영화배우 김민희씨가 간통죄 폐지 후 첫 사례로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그러나 이것은 비단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저지르는 범죄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젠 사회가 이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부부는 성적인 부분에서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법에 호소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정만 깨어지고 파괴될 뿐입니다. 결국,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해도 이런 행위는 사회를 문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을 깨뜨리기에 법적 규제의 필요성이 충분합니다. 따라서 국가는 적극적으로 혼인이라는 제도를 보호하는데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간통죄를 폐지함으로 인한 수많은 피해를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가 너무 보수적인가요? 그렇기에 성경은 간음에 대해 자신의 가정과 상대방의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금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약 범했다면 아주 강력히 처벌하라는 것입니다.
③ 사회를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간음 사건’을 꼽으라면, 당연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사건만 보더라도 결국, ‘간음’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까지 파괴했고,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직면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성안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음란’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음란의 범죄’로 인하여 사회가 망한 경우이지요. 로마는 또 어떻습니까! 로마 역시도 문란한 ‘성’이 한몫을 차지했었죠. 특히 그리스-로마 시대에 성행했던 ‘소년애(pederasty) 문화’는 아주 대표적인 음란 문화였습니다. 당시 소년은 대개 권력이 없는 노예였으며, 그가 자라면 버려지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소년이 자라 자유 시민이 되면 그들 간의 성행위는 중단되었습니다. 현대의 동성애 옹호자들은 그리고 로마 당시 엘리트나 철학자들이 자행했던 이 ‘소년애’를 ‘완벽한 사랑’이라고까지 찬양하며 선전합니다. 그런데 사실, 소크라테스는 물론 후대의 많은 철학자가 동성애에 대해 도덕적 이유에서 ‘성적 타락’이라고 비판하고 거부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도 많은 사상가가 ‘소년애’ 현상을 보고 조롱하거나 ‘로마가 망하게 생겼구나!’라며 한탄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로마에 유입될 당시,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로마의 문화는 그야말로 ‘타락한 문화’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로마제국의 멸망의 한 원인으로 ‘성적 타락’이 한몫을 했다는 비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윤리적’ 기독교가 환영받았던 것입니다. 바로 로마는 간음의 죄가 가져온 최후의 결과를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희랍을 정복했지만, 희랍의 오염된 성 문화는 마침내 로마를 정복하고 말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도덕하고 타락한 성 문화에 의해 로마가 정복을 당하고 결국엔 멸망을 맞게 된 것을 빗대 하는 말입니다.
④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폼페이(Pompeii)의 최후’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알려진 로마의 ‘폼페이’는 기원후 79년 8월 24일, 베스비오 화산폭발로 멸망한 이탈리아 남부 도시입니다. 거대한 화산폭발로 불과 18시간 만에 도시가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본래, 폼페이는 로마 정치가이자 위대한 장군이었던 폼페이를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진 항구도시로써 로마 귀족들이 휴가를 즐기는 휴양지로 가장 번영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은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생산물로 인구가 많았고 활발한 교역으로 인해 시민들의 삶 또한 아주 부유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매우 사치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부유한 도시에 살았지만, 폼페이 시민들은 이 천혜의 조건을 잔인하고도 음란한 생활방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들은 피와 광기를 즐겼는데 ‘검투 경기장’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원형 경기장은 1만여 명의 관중을 수용할 정도로 당시 절반 이상의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었고, 이런 피비린내 나는 취미가 성행했다는 사실은 폼페이 시민들의 도덕성이 얼마나 타락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은 도덕적 타락과 더불어 음란한 성행위와 동성애 그림들이 도시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발견됨으로써 그 정도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벽이나 저택 안 등에는 남녀가 교합하는 춘화가 공개적으로 붙어 있었고 시민들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도 ‘음란의 신’이었습니다. 결국, 한 차례의 치명적인 재앙으로 인해 폼페이의 모든 생명이 순식간에 거대한 화산재 속에 묻혀버림으로써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폼페이는 이후 아무도 그 도시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무려 천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지하에 매몰된 이 죽음의 도시가 발굴되기 시작했습니다. 레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간음’은 거룩을 완전히 상실하게 하며 위배 되는 대표적인 행위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는 간음은 반드시 죄의 대가를 그 범죄 한 자에게 묻고, 심판하십니다.
그렇다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피해야 합니다. 딤후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간음은 싸워야 할 죄가 아니라, 피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죄의 문제입니다. 잠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여러분!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창세기 39장에 요셉은 자신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바로,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요셉에게는 그 자리를 피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유혹과 미혹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② 하나님의 임재를 자각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간음에 빠질 때 마음속에 들리는 음성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시고, 우리의 형질까지 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죄를 물으십니다(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신 하나님!). ③ 말씀과 기도로 삶과 인격을 채워야 합니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깨끗하게 될 수도, 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정결하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생각과 탐욕, 그리고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정욕을 물리치고, 우리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야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삶에서 생명의 꽃이 피고, 생명의 열매를 맺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간음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간음’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바로 ‘영적 간음’입니다(우상 숭배 등). 따라서 우리의 욕심과 정욕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이 간음하지 않는 방법이며, 그리스도인이 생명을 얻는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완전한 남편, 완전한 아내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불완전합니다. 다른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부터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을 잊어버리고 남에게만 완전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은 이기주의의 극단입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 수용할 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사랑과 수용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경건한 신앙심과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게 하려는 수많은 유혹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영적 간음’을 범하기에 너무도 좋은 시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가정 안에서 예배를 회복하고, 기도시간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는 신앙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삶의 모든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부끄럽지 않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세상 어디에서나 향기로운 냄새, 생명을 살리는 냄새가 되어 복음의 꽃을 피우고,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가정, 오직 거룩함의 옷을 입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가장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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