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창조 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이것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명령이었고 동시에 인간에게 부여된 권세였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동일한 명령이 주어집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창9:2)” 그런가 하면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라(시8:6-8)”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만물이 사람의 다스림에 순종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창조 질서가 어그러진 지금도 여전히 만물은 사람의 다스림 하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잘 받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 질서인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나를 다스리고 주변을 다스리고 맡겨 주신 모든 창조 세계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는 ‘나’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데 나를 다스리는 것 중에 큰 부분이 곧 ‘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다 길들일 수 있는데 유독 ‘혀’는 길들일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입니까? 사람의 힘으로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혀는 사람에 의해 다스려질 수 없습니다.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가진 나 자신의 힘에 의해서는 나 자신을 다스리기는커녕 세치 혀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본 절은 혀를 ‘쉬지 아니하는 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스려지지 않는 혀가 있는 한, 악은 쉬지 않고 생산됩니다. 성령에 붙잡히지 않은 혀는 거짓과 비방과 욕과 저주를 일삼고 퍼붓는 데 서슴지 않습니다. 아무도 다스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혀를 다스리고 나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외부의 힘, 곧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때부터 생각과 마음이 거듭나기 시작하고 그제야 혀를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혀가 성령에 붙들려야 ‘쉬지 아니하는 악’을 끊고 전혀 새로운 도구, 성령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쉬지 아니하는 악’으로서의 혀를 ‘성령에 사로잡힌 혀’로 다스려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쉬지 아니하는 악한 혀가 심각하게 파괴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활동입니까? 교만하고 자랑하고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단합과 일치를 방해하고 평화와 기쁨을 깨트리며 하나님과 우리가 의를 이루지 못하도록 사이를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악한 혀에는 죽이는 독, 파괴하는 독이 가득합니다. 그 독에 물리면 모든 관계가 파괴되고 치명타를 입히기에 나의 ‘혀’를 성령님께 사로잡히도록 해야 합니다. 내 혀를 성령님의 다스림 속에 맡기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내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혀’를 사탄에게 내주어 이 땅에 사는 동안 악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성령님께 맡겨드려 의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성령님께 내어드려 성령께서 쓰시는 성령의 입술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로하고 사랑하고 소망하고 긍휼을 베푸는 말을 하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택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우리 자신이 성령의 삶 아래 다스려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 아래 우리의 혀를 제어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 판단, 우리의 인생, 영혼을 곧 하나님께 의지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성령이여, 우리의 혀를 지켜주셔서 우리가 말로 저지르는 모든 악행을 멈추게 하시고 오직 의로운 입술의 열매를 거두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 모두 이러한 입술의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고보서
2017.09.12 16:37
성령으로 다스려지는 말(3장 7절-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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