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역설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가장 존귀한 분이시지만 가장 낮은 곳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아야할 존재이시지만 오히려 저들을 죽기까지 섬기시며 겸손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삶을 본받아 역설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낮은 형제’를 의미하는 헬라어 ‘타페이노스(ταπεινὸς)’는 ‘비천한, 연약한, 가난한’ 등의 뜻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청빈하고 의로움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입니다. ‘높음’은 위치의 변화를 뜻하는데, 본 절에서는 신분이 변했음을 으미하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신분이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종들이 많았습니다. 사회에서 멸시 당하고,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이 노예였는데, 이들은 아예 인격이 무시당하고, 물건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그리스도 공동체의 한 사람이 되고부터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합당한 인간적 대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 귀한 자와 비천한 자 모두 다 평등한 위치에서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에 대한 ‘가치의식’을 심어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가 느꼈던 ‘무가치의 삶’에서 새로운 가치와 중요성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합니다. 종으로 비참하게 살던 사람에게 새로운 인격과 자기사랑의 가치관을 심어줍니다. 겉 사람은 비록 종의 삶을 살았지만, 속사람은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변화시켜줍니다.
초대교회에는 계급이 없었습니다. 노예 신분의 사람이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행했으며, 보다 높은 직을 수행한 예도 많습니다. 교회에서는 사회적 계급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상하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상전과 종이 한 자리에서 식탁을 나누었고, 상하의 계급이 없었기 때문에 동등한 자격으로 낮은 자와 높은 자가 교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결국 상대적으로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는 낮아지는 셈이 되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교회에서는 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도구입니다. 도구의 종류에 따라 맡은 일이 다르듯이 비천한 사람이나 존귀한 사람이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는 세상적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그 필요 적절한 곳에 사용하십니다. 어쩌면 세상의 신분과 정반대의 위치에 세우시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의 종이나 상전이나 다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약한 것을 들어 쓰셔서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아낌없이 주시기까지 아끼신 우리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은 천한 자나 귀한 자나 다 같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다 귀중하고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낮은 형제’가 ‘자기의 높음’을 자랑할 만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인격체로서 존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정말로 낮은 상태일 때는 ‘죄의 종’으로서 얽매여 있을 때입니다. 죄의 사슬에 얽매인 자유롭지 못한 비참한 상태, 즉 죄에 종노릇하는 노예 신분에서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은혜의 피 값으로 구속함을 받고, 죄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죄에서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얻게 되었기에 자랑할 만합니다. 죄의 종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기에 높아진 상태, 자랑할 만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이는 그리스도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이 신답공동체에서도 낮은 자가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는 곳이 되어야합니다. 낮은 자, 없는 자, 못 배운 자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등하게 취급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 속에서 멸시받고, 천대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 하나 된 삶을 사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로는 평등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손가락질 받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런 까닭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썩어질 존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의 신분 상승을 얻게 된 것에 대해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천국 시민으로 자유인이 되었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서로 존중하고 높여주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역설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역설의 삶을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중심에 살아계시는 믿음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할렐루야!
야고보서
2017.09.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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