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017.09.12 16:24

욕심의 결과(1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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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과 시험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본 절은 그 단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어두운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정적인 원인은 ‘욕심’에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본 절은 시험(시련, 유혹)에 굴복하는 경험과 순서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 순서를 잘 보면 유혹의 미끼인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또한 죄가 점점 크게 자라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욕심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본 절은 악한 욕심의 족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에 이르게 하기에 욕심은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욕심이 의의 상태를 없애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조화의 상태로 만듭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또한 자신과의 관계도 끊어버립니다.
  욕심의 뿌리를 굳이 찾자면 그것은 불만족인데 그래서 불만족한 상태부터 경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불만족한 상태를 차단하지 못하면 잘못된 욕심을 따라 유혹에 빠지고 죄의 단계를 거쳐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기에, 성도는 불만족한 상태에서 오는 유혹과 시험을 먼저 잘 이겨내야 합니다. 일단 죄를 짓게 되면 연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행위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죄 짓기 전 유혹의 단계에서부터 먼저 주의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테면 술과 담배는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술과 담배의 유혹에 계속 넘어가고 있다면 중독 상태에 이르기 전에 하루 속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더 이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이겨내지 않으면 영영 헤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혹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유혹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낳다’라는 단어는 ‘사람의 해산’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고, ‘짐승이 새끼를 낳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욕심이 생겨서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사망을 낳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짓는 행위가 짐승과 같은 행위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짐승과 같은 행위를 저질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동물은 나누어 먹는 것이 없습니다. 어미가 본능적으로 새끼에게 먹이를 잡아다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물은 나누어 먹지 않습니다. 인간이 욕심이 생겨서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사망을 낳는 것은 인간의 위치에서 짐승과 같은 위치로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동물로 전락하여 그 형상을 상실했음을 뜻합니다.
  결국 우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제하면 어떤 면만 남겠습니까?
  첫째로, 동물적 요소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은 동물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둘째로, 정말로 죄를 짓는 인간들을 보면, 동물들도 하지 않는 동물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집에 울고 가는 초등학생을 차에 태워 공기총으로 죽이는가 하면 입에 담기도 어려운 극악무도한 짓을 인간이 저지르는 것은 이미 동물 이하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최근의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패륜적 범죄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죄를 짓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너무 쉽게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인, 시기, 질투, 미움, 욕하는 것, 불평, 원한, 복수 등의 일들을 너무 쉽게 스스럼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동물들도 배가 부르면 약한 동물을 잡아먹지 않는데 반해 인간은 자기 배가 불러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제외하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동물적 요소 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동물 정도만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련만 동물 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에 하나님의 가슴은 오늘도 찢어집니다.
  단순히 우리의 육신이 살아있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죄의 길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형상 안에 거하시는 삶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