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3:46

동굴에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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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 시가지 한 모퉁이에 구두 닦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구두를 닦으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구두를 닦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니?” 소년은 늘 한 결 같이 대답했다. “예, 그런데 저는 구두 닦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영국이 사랑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이다. 대표작 ‘위대한 유산’으로 잘 알려진 그는 영국이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쓴 것이 지나고 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으로 공자(孔子) 선생이 논어에서 한 말이다. 이 사자성어와 함께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가 있었는데,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 공부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됐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숱을 붓으로 삼고 나뭇잎을 종이로 삼아서 밤낮 공부했다. 이 사람이 누군 줄 아는가? 중국 문학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그 유명한 ‘도종의(陶宗儀)’라는 사람이다.
  영국의 ‘찰스 디킨스’나 중국의 ‘도종의’나 모두 고진감래의 인물이다. 비록 인생의 출발점이 고난스런 환경이었지만 이들은 어려운 환경과 형편을 잘 견뎌내며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쓴물의 인생’을 ‘단물의 인생’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도 고진감래의 인물이 있었다. 다윗이 바로 그다. 다윗은 사울의 시기를 받으면서부터 고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군대를 피해 광야와 동굴을 전전해야만 했다. 다윗은 동굴에 있었고 그의 인생은 동굴 인생이 되었다. 다윗은 고난은 보통 고난이라 생각하는 것보다 안팎으로 더 시달렸던 고난이었다. 다윗을 쫓는 사울이 누구인가? 단지 모시던 왕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장인이었다. 게다가 다윗은 사울의 군대 장관 아니었는가? 다윗의 고난이 더 비참하고 어려웠던 것은 바로 이런 한심한 상황에 있었다. 광야를 전전하고 동굴에서 동굴로 피신하며 숨어 지내던 다윗은 그날도 이름 모를 동굴에 있었다. 거기서 그는 무엇을 했는가? 엉엉 울며 답답하고 힘든 자기의 속내를 하나님께 쏟아놓았다.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600명 이상의 식솔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눈물짓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날 다윗은 거기서 울며 기도했다. 구약성경 ‘시142편’이 바로 그 기도다. 우리는 이후 다윗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름 모를 동굴에 있을 때, 칠흑 같은 절망의 터널에서 눈물짓던 사나이는 이스라엘의 지존이 된다.
  인생의 동굴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렇다면, 인생에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견디기 힘든 이름 모를 고난의 동굴에 처할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고진감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세상을 향한 원망과 탄식, 방황을 멀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의 속내를 털어놓아야 한다. 신앙이란 솔직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까지 체면 차리며 앉아 있을 것인가? 그렇게 애타고 속만 썩이고 있기 보다는 다윗처럼 가감 없이 나의 속마음을 쏟아놓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것이 더 유익한 선택이 아닐까?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시편 142:6)
  인생의 동굴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고진감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된다. 혹 고난의 동굴에 처해 있는가? 그렇다면 기도하라. 그러면 고난 중에서도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찰스 디킨스’나 ‘도종의(陶宗儀)’, 그리고 ‘다윗’처럼 고진감래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