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3:45

개념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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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이 우리 사회 속에 개념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도가니라는 소설로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고 사회 개혁에 일조했다면 일조한 소설가 공지영 씨는 유명 가수와 국민 스포츠 선수에게 ‘개념 없다’는 비판을 가했다는데, 종편 방송에 출연했다는 게 이유였다. 글쎄, 그것이 개념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누가 개념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그 분이 자기 나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가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개념’이란, 판단을 하고 논지를 펴며 행동을 하고 관계와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이처럼 중요하며 결정적이다.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영국 런던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 중에 모리시마라는 일본인 교수가 있다. 이분이 1982년에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일본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짧은 시간 내에 서구 유럽보다 더욱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일본적 유교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보았다. 일본적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주종 관계적 노사문화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한번 직장에 취업하면 잘 옮기지 않는다. 한번 직장은 평생직장으로 삼는다. 게다가 주종 관계적 노사문화이기 때문에 노동쟁의가 없고 파업이 거의 없다. 짧은 시간 내에 서구 유럽도 해내지 못한 경제 대국으로의 성장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회적 개념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모리시마 교수가 1982년도에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라는 책을 펴낸 이후 20년이 지난, 2002년도에 다른 책을 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였다. ‘일본 성공’을 말했던 그는 어째서 ‘일본 몰락’이란 개념 없는 듯한 말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모리시마 교수가 새로운 개념으로 일본 사회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새로운 개념은 일본이 경제 성장에 유리한 사회적 개념 덕분에 비록 경제대국은 됐지만, 일본 사람에겐 세계를 움직일만한 또 다른 사회적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 어느 사람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일본인, 세계적 친화력에 못 미치는 일본인의 개념 없음,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강해졌더라도 그런 경제력만으로는 세계 속에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고,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그가 주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일본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모리시마 교수가 바라보는 개념은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고 나름 개념 있는 관점이라 생각한다. 만약, 일본인들이 모리시마의 조언을 ‘무슨 개념 없는 소리’라 하지 않고, 겸허히 경청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일본은 자기 세계에 갇힌 소신민적 기질을 넘어서서 경제대국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계 속에 큰 민족으로 우뚝 서게 되지 않을까?
  ‘개념없음’이라는 책을 펴낸 김남준 목사님이 던지는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요사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고 물질을 신봉하며 오로지 자기 성공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면, 자기만 성공하면 그것이 과연 성공인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인생 성공은 삶에 대한 존경이고 관계성이고 영향력이다. 이런 개념을 상실하니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좁고 냉정하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이해심이 없다. 꼭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이해심이 없고 사랑이 없다. 여기서 부딪치고 저기서 부딪치고 그래서 상처로 가득 차서 산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개념,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개념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일까? 바로 ‘관용’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적 개념은 바로 ‘관용’이었다. 관용은 사랑이고 너그러움이고 이해와 용서이며 배려와 헌신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이 ‘관용의 개념’을 겸허히 수용하고 회복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인생이 빛나게 될 뿐 아니라 빛나는 한 개인의 인생을 넘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름답게 빛내는 영광스런 역사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늘나라 백성은 냉정한 자기중심적 소시민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성과 헌신하는 마음, 관용의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개념없음’이란 신조어가 생길정도로, 상식 밖의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이다. 혹시 나는 어떤가? 지독히도 개념 없는 사람은 아닌가? 많은 사람을 짜증나고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개념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개념회복의 길 어디에 있는가? 참된 개념 회복과 온전한 성숙을 이루는 길, 먼저는 자기 성향의 치부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관용하는 넓은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다. 개념회복으로 세상을 진창으로 만들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고 다 같이 잘사는 길로 함께 나아가지 않겠는가! 개념을 회복하면 외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 있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복스럽고 덕스러운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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