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3:35

조금씩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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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급한 성격을 가진 민족 중에 하나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한국 사람들도 인정하는 바다. ‘빨리 빨리’ 유명하지 않은가? '왜 우리 민족이 급하다고 평가 받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박에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급증과 조기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이 조금씩 일을 만들어가고 이뤄가는 것을 못 견디게 하고 매사 서두르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일하다가 문제에 부딪치면 쉽게 화도 잘 내고 사람과의 관계도 어렵게 되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다.
  소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외양간에 불이 나면 소가 불이 무서워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끄집어내려고 해도 나오지를 않는데, 여물통을 확 엎어버리면 안 나오려고 고집 부리던 소가 여기는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여겨 나온다고 한다. 불이 난 외양간은 더 이상 머물 곳이 못 되는데도 여물통 있는 자기 자리만 고집 피우던 소가 여물통이 사라지자 고집을 꺾은 것이다. 사람이 자기 신념을 바꾼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나 논리가 뻔히 틀린 듯해도 그 생각이나 논리를 잘 안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 심한 경우, 죽는 것이 보여도, 다 같이 망하는 것이 보여도 끝까지 고집을 안 꺾는다. 자기 신념이 매우 강한 교수님이 계셨다. 그 교수님은 제자가 질문할 때 자기 학문적 신념에 조금이라도 도전적이다 싶으면 질문한 제자를 상대로 끝날 줄 모르는 적대적 논쟁을 벌이곤 하셨는데, 교수님도 교수님이지만 학생도 만만치 않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업 시간 내내 논쟁하는 것을 보면서 주위 친구들이 수업 진도나 분위기를 생각해서라도 공격적 질문이나 논쟁을 자제해줄 것을 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교수님이나 학생이나 자기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자기 논리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 얼마든지 발전적일 수 있는 질의응답이 언제나 적대적인 논쟁과 감정적 사투로 흘러버렸던 것이다.
  건전한 사고와 바람직한 소통을 위해서는 내 이론이나 상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씩 진리를 발견해가려는 '조금씩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자기 분야라도 그 분야에 어떻게 완전히 정통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정통했다고 한들 다른 분야와의 관계에서 또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완전히 부정할 수 있겠는가?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처음 블랙홀 이론을 제시한 뒤 30년이 지나서 블랙홀에 대한 자기이론을 완전히 바꾸었다. 블랙홀은 오직 물질을 빨아들이기만 한다고 주장해 오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과 계속되는 연구 속에서 블랙홀에서도 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단서를 조금씩 발견하게 된 것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급기야 30년 만에 블랙홀에서도 물질이 나오며 그 물질을 잘 분석하면 미래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한 분야의 대가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이론의 발견이나 체험을 통해서 신념에 찼던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금씩 진리를 발견하고 발전해가기를 원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턱대고 내 주장만 앞세우며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나 이론, 자기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론이나 주장이라 할지라도 섣부른 판단을 보류하고 일단 수용한 뒤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여유를 갖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지나친 자기 신념과 고집이 일을 그르치거나 망치는 일이 허다한데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조급하게 내 신념만 진리라 내세우는 ‘조급한 진리’를 내려놓고 조금씩 진리를 추구하다 보면 조금씩 깨달음을 얻고 보다 온전한 진리에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이것을 '조금씩의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날마다 배우고 깨달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이 인생이요, 만물의 질서인데, 정체나 퇴보, 고립과 추락으로 이어지는 '조급한 진리'를 붙들고 살 이유가 있는가? 그보다는, ‘조급한 진리’를 내려놓고 ‘조금씩의 진리’로 살아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어 간다면 재미나고 기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 상식과 신념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다가 온전한 진리에서도 멀어지고 스스로 고립되는 재미없는 삶을 살 일이 아니라 열린 마음과 '조금씩의 진리'로 깨달아가는 기쁨을 누리며 보다 온전하게 살 일이다. 발전하고 화목하며 더불어 함께 사는 온전한 삶을 사는 길, '조금씩의 진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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