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3:40

오늘 잃어버린 것

조회 수 2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황희 정승 집에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영감 마님! 오늘이 어머니 기일인데 아들이 아파서 아내가 자꾸 제사를 미루자고 합니다. 저는 제사를 꼭 드려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황희 정승이 대답합니다.
  “가서 제사를 드려라.”
  잠시 후에 다른 젊은이가 와서 또 여쭈었다.
  “영감 마님! 오늘이 저희 어머니 기일인데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건너뛰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가서 제사를 드리지 말고 건너뛰어라.”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집안 하인이 말했다.
  “영감 마님! 똑같은 상황인데 왜 한쪽은 제사를 드리라고 하고 한쪽은 건너뛰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랬더니 황희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무조건 제사를 드릴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제사를 건너뛸 사람이네!”

  무엇을 말하는 이야기인가? 황희는 자기 입장에 대해 지지를 얻을 목적으로 찾아온 두 젊은이에게 쓸데없는 조언을 입만 아프게 늘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견해를 들어보고 자기 입장을 취하기 위한 마음과 자세가 아님을 간파한 황희는 과연 정승답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가 한번 생각하고 작정한 것은 그대로 하려고 하는 특성이 있단다. 충동의 경제학이라는 책은 이런 특성을 ‘확인 편향의 오류’라고 정의하는데, 이를 다시 ‘선택적 지각 특성’이라는 전문 용어로 설명한다. 한마디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경험하고 싶은 것만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그 자극에 대해서도 특정한 자극에만 반응한다는 일종의 정신 분석학적 설명이다. 가령, 사형 제도에 대해서 찬성하는 그룹과 반대하는 그룹을 모아놓고 사형 제도가 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을 읽히게 한 다음, 혹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용들까지 종합한 결과, 어떻게 견해가 달라졌는지를 실험한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자기 견해가 더욱더 확고하게 된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무엇을 말하는가? 한번 생각하고 작정한 마음을 잘 바꾸지 않으려는, 그 시각과 입장과 가치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공정하지 않은 심리적 오류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선택적 지각 특성’, ‘확인 편향의 오류’라는 일종의 정신분석학적 설명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문제는 이런 공정치 못한 특성과 오류가 보다 중요한 것을 잃게 한다는 데 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선택적 지각 특성’과 ‘확인 편향의 오류’가 있었다. 특히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거기에 모여든 군중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고, 어서 빨리 십자가에 처형해야 한다'는 견해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 들을 것도 없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군중들은 선택적 견해와 편향된 입장에 서서 예수에 대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구경하고 싶은 십자가 처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인가에 ‘집단적으로’ 홀린 듯 ‘예수 처형’을 외쳤던 군중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집단’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여 ‘집단 선택적 지각 특성’, ‘집단 확인 편향의 오류’라고 이론을 확장할 판이다.
  그런데 한 사람, 공정하지 못한 특성과 오류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예수님과 특별한 친분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고, 이전에 특별한 만남을 가졌던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상관으로부터 예수 처형 집행을 명령 받은 책임자였을 뿐이다. 그는 ‘예수 처형’을 외치는 군중들과도 달랐고 처형 명령을 내린 상관들과도 달랐고, 예수님을 희롱했던 부하 병사들과도 달랐다. 그는 그 나름대로 예수에 대해 중립적인 마음을 지키길 원했고, 집단의 목소리에 편승하기보다 그가 왜 이처럼 비참하게 죽어가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쪽에 서기를 원했다. 그 관심이, 그 열린 마음과 자세가 그를 무서운 집단 오류에서 건져냈고, 그의 눈과 마음을 예수께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목도한 백부장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향하여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혹 열린 마음은 아닐까? 열린 마음을 회복하면 편견과 오류, 거짓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