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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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보로프(G.Taboloff)라는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1984년도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1986년에는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경연 대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차이코프스키 경연대회는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로써 이 대회에서 입상하는 사람은 대단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 보아도 타보로프가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이 대회를 위해서 10년 동안 러시아어까지 배우면서 준비해 왔기 때문에 우승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연 하루 전에 모스크바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벌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타보로프의 새끼손가락에 침을 쏘고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손가락이 갑자기 부어올랐고 감각마저 없어졌습니다. 경연대회의 심판관은 사정을 참작하여 그의 연주를 며칠 뒤로 연기해 주었지만, 결국 연주를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사람의 뛰어난 재능도 하찮은 벌 한 마리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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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5959145)

 

  ‘음악신동 1’ ‘유학파 음악인 1’, 한국 피아니스트 1세대 한동일씨를 따라다닌 수식어입니다.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한동일의 해로 꼽는 것은 1954년입니다. 6·25 종전 이듬해 그는 미군 헬기를 타고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군 사령관이 그를 위해 유학 자금을 모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뉴욕 리벤트리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한국 최초 콩쿠르 우승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연주를 끝내고 혼자 호텔 방에 누워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천장이 무너지고 사방의 벽이 좁혀져 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담요를 뒤집어 쓰고 끔찍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내 삶이 달라질 거란 걸 예감했습니다.”

 

 연주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열셋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혼자 유학을 떠났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굶어 죽느냐 아니냐를 놓고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음악을 하기 위해 천국으로 떠났다 여겼습니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연주해야 했습니다. 미군이 모아준 유학 자금은 떨어졌고, 물건을 들고 해외를 떠도는 세일즈맨이 된 기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스포트라이트가 싫어졌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러시아 내셔널 심포니, 로열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고, 런던 필하모닉과는 스무 번 넘게 함께했고, 케네디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연주했던 스타였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늘 혼자라는 외로움과 스트레스 때문에 힘겨운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인 시민회관에서 귀국연주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귀국 첫 연주회라 얼마나 긴장했던지 연주회 도중에 갑자기 팔에 마비증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연주회가 무산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온 것입니다. 그 때 떠오른 분이 바로 어머니 김은경 권사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연락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긴장하면서 피아노를 치다 보니, 팔에 마비증세가 일어나서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끝까지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아들의 인생이 달려 있는 국내 첫 연주가 실패로 돌아갈 까봐, 어머니는 신앙의 동료들과 함께 아들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무대 뒤로 올라갔습니다. 아들이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내내, 권사님과 동료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중간 중간 무대 뒤로 들어오면서 아들이 말합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비증세가 오던 팔에 힘이 솟아오릅니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결국 피아니스트 한동일의 귀국독주회는 성공적으로 마쳐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