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뜻한 말은 큰 위로가 되지만, 비난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으로 내몰아갈 수 있습니다. 생명을 가진 말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고, 화살이 됩니다. 흔히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한 번 뱉은 말, 엎질러진 물, 시위를 떠난 화살, 흘러가 버린 시간 등 4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말은 그 말을 듣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말에는 말하는 이의 의도와 인격 등을 담고 있기에 듣는 이의 마음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 말을 사려 깊고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야고보서 1:19절의 말씀과 연결되는 교훈입니다.
말을 기분 나쁘게 하면 듣는 이만 마음이 상하고 다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에게도 화가 미치게 됩니다. 당나라 말기부터 11명의 천자를 섬긴 재상 풍도는 ‘설시’에서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口是禍門 舌是斬刀身)”이라고 했습니다. 앞뒤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은 자신의 목을 옥죄는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경책하는 격언입니다. 혀가 칼이 되고 입술이 창이 되어 사람을 베고 찌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분노’는 히브리어 원어상 ‘열’, ‘독’이란 어의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극한에 이른 맹렬한 분노를 일컫습니다. 이러한 맹렬한 분노를 쉬게 하고, 멎게 한다는 것은 부드럽고 정중한 말이 상대의 극렬한 분노를 가라앉힐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돌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과격한 말의 문자적 의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험하고 거친 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내적, 외적 삶에 상처를 내고 그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혀를 제어하는 신중한 생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말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권세를 아름답게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도 간에도 서로 세워 주지는 못할망정 공격적인 말과, 비판적인 말들로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말의 권세가 있는데 그 권세로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하나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데 사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자신의 말의 습관부터 점검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교회에서는 신실한데 가정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합니까? 가정에서는 존경받는 아버지인데, 직장에서는 말도 못 붙일만큼 공격적이고 무서운 사람입니까?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선하고 아름다운 말들로 생명을 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거할 수 있는 복 되고 귀한 입술과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언서
2017.09.14 10:28
생명을 살리는 말(15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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