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4:03

삼손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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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최후

  삼손은 신앙에 있어서 그닥 모범적이어 보이지 않으나 성경은 사사기 13-16장 4장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른 시기인 1200-7년 사이 제작된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의 코로나 채플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된 삼손과 데릴라에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삼손과 데릴라, 그리고 침실로 침입하는 블레셋 제후들이 있습니다. 이 이미지를 둘러싼 원형의 테두리에는 “삼손이 그의 여인을 위해 잠들었듯, 예수의 육체가 교회를 위해 대리석에 갇혔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중세교회에서는 삼손을 그리스도의 원형으로 강조하여 이 상징을 널리 사용하였습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과 에피소드가 회자되었지만 특별히 삼손은 많은 회화작품으로, 오페라로, 영화로 꾸준히 재해석되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삼손의 최후는 헐리우드의 흥행공식인 가족애, 해피엔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극과 복수의 통쾌한 반전은 여전히 재미가 있어 인기가 있습니다. 비록 삼손은 필멸자로서 그의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지만 동시에 생전에 그의 모든 승리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두는 이 압도적인 긍정성으로 인해 그가 죽은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이야기되어지며 이야기 속에서 영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영생의 이미지를 환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망적인 최후와 동시에 진행되는 압도적인 승리는 일반적인 무신론자들의 최후에서는 극히 보기 어렵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와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은 자기의 모든 세계가 소멸하는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최후를 앞두게 되면 몹시 비참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볼테르,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삼손처럼 눈이 빠지고 힘을 잃고 적국 한가운데서 재롱을 부리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 다다르면 무신론자들은 더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삼손의 최후는 오직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은 긍정할 수 없는 자기 존재의 바닥에서 상황을 뒤집는 자기 바깥에서 오는 힘, 그 존재의 위대함을 역설합니다. 이렇게, 삼손의 최후는 위대한 존재의 압도적인 승리 가운데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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