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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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라는 말은 쉽게 정의내리기가 어려운 단어이다. 한마디로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이 세상에 많은 동물이 있지만 온유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 있다. 무엇일까? 양이다. 양은 그 자체로 온순한 동물이다.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 곰 등의 사나운 짐승도 서커스단에서 훈련을 통해 얌전히 말을 듣는 모습을 보면 온순해 보일 때가 있다. 원래 포악한 짐승들이고 야성이 있는 동물들이지만 잘 길들여지면 정말 양 같이 온순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 상태를 ‘온유’라고 표현한다. 결국, 온유라는 성품은 단순히 연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온유는 훈련된 인격, 길들여진 인격, 조절된 인격이라고 하는 의미가 더 깊다. 그래서 이 온유는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일이나 말에 대하여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나의 온유함을 헤아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영성 치유작가로 알려진 ‘루이스 헤이’는 “나는 과연 온유한가?”를 스스로 파악해 볼 수 있도록 몇 가지 질문을 제시했다. ①다른 사람이 내게 봉사할 때 나는 그를 이해하는 쪽에 있는가? 아니면 요구만을 고집하는가? ②다른 사람이 나를 실망시켰을 때 나는 온유하게 대답하는가? 아니면 정죄를 하는가? ③다른 사람이 나와 의견을 달리할 때 부드럽게 대하는가? 아니면 사나워지는가? ④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지적해줄 때 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마이동풍(馬耳東風)식으로 남의 말을 들어도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보내는가? ⑤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다른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고,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데도 부드럽게 대하며, 나에게 상처를 주는데도 온유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인격은 훈련되어질만 한 것 아닐까? 이 세상 살다보면 우리의 성정을 건드리고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낸다면 인격적으로 아직 다듬어지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수 없다.
  온유함은 억울하지만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 경험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난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더구나 그 이유가 터무니없이 황당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비난 받을 때에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우리들의 모습은 분노와 자기 방어이다. 자신이 비난받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방어하기에 바쁘다. 그것도 어려우면 변명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 이유를 돌리던지 아니면 환경을 탓한다. 조금은 바보 같지만 자신을 방어하기 보다는 진실이 드러날 때를 기다리는 인격 그리고 오히려 나아가서 비난하는 상대를 품어줄 수 있는 넓은 사랑의 그릇까지 지닐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온순한 성격은 타고날 수 있는 것이지만 온유의 덕목은 훈련되어지는 인격이다. 그러기에 스스로를 인격의 훈련과정 위에 올려놓을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바보가 되려하기보다는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이 시대에 이 온유함의 덕목이 참으로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