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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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 ‘희생’하면 '사랑의 원자탄' 고(故)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아들이 공산당원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했을 때 목사님은 금쪽같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고, 장례식 때 10가지 감사를 드렸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짐 또한 감사합니다.
  셋째, 3남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8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장례식 때 이 10가지 감사와 함께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찬양을 했다. 그리고 감사헌금으로 일만 원을 드렸다. 당시 목사님의 한 달 사례비가 8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을 드린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6.25가 나고, 여수가 점령당했을 때 많은 분들이 피난을 강권했지만, 목사님은 피난길에 오르지 않았다.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두고 어디를 가느냐?” 결국 손 목사님은 공산당에게 붙들렸고, 감옥에서 총살을 당했다. 두 아들의 순교도 모자라서 자기 몸까지 순교의 반열에 던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고(故)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다 차디찬 감옥에서 순교했다. 돌아가실 때 그분의 마지막 말은 소박했다. “여보!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먹고 싶소!” 마지막 면회 때 소원이 고작 숭늉 한 그릇이라니! 하지만 한 인간의 소박한 인간미(는 처절한 순교의 믿음을 따뜻한 감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생각해보면 베드로도 세 번 부인했는데, 까짓것 눈감고 딱 한 번만 부인하면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뿐이겠는가?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가장 소중한 자기 인생을 주님 때문에 내어던진다. 배신의 반열이 아닌 순교의 반열에, 열렬하고도 소박하게 내어던진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기독교(基督敎)의 역사는 순교자(殉敎者)의 피로 세워진 역사이다. 무수히 알려진 순교자들도 있지만, 이름 없이 죽어간 순교자들도 많다. 이국땅의 순교자들은 그만두더라도 이 땅 이 민족 가운데 주의 이름으로 죽어갔던 순교자들 때문에 한반도의 기독교는 오늘로 이어오고 있다.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갔던 수많은 순교자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거룩한 순교의 삶으로 이끌어 왔을까? 무엇이 저렇게 살게 했을까?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 중심에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을 잃은 그 깊은 슬픔 속에 사랑의 원자탄이 있었고, 숭늉 한 그릇이면 족한 은혜가 있었다. 하지만, 알지만,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오늘 나는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