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와 목사와 랍비가 하나님께 드릴 헌금에 대해 얘기를 했다.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그런 얘기였다. 신부가 먼저, 동전을 높이 던져서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고 왼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자기 몫으로 할 것이라 하니, 목사가 자기는 땅에 조그만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동전을 던져 원 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 몫이고 원 밖의 것은 자기 걸로 할 셈이라고 했다. 이어서 랍비가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먼저 다 하나님 앞에 던져드릴 걸세. 공중에 던져드려서 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으로 하고, 그 다음 땅에 떨어지는 것은 내 것으로 하려네.” 세 사람은 또 한 가지를 의논했다.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은 각자 그렇게 한다 치고, 그러면 남의 것은 어떻게 구분할까?” 한 가지 제안이 떨어지자마자 세 사람은 합의를 봤다. “깡통 하나를 중앙에 두고 동전을 던져서 들어가는 것은 남의 것으로 하세.”
사람이 자기 몫에 담긴 하나님의 것과 남의 것에 대하여 얼마나 인색한지, 그 인색한 마음을 들춰내는 우스개이다.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 몫을 떼려하지 않는 인색함에 남의 몫에 대해서도 궁색하다. 글쎄 조그만 깡통에 동전을 꼭 들어가게 던져 넣으려 해도 잘 안 들어갈 장치에다 들어가도 그만 안 들어가도 그만, 혹 안 들어가기를 바라는 식으로 던질 판에 과연 남의 몫이 얼마나 떼어질 수 있을까? 우스개지만 너무 우습다.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16:13)고 말씀하신다. 누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고, 누가 재물을 섬기는 자인가? 내게 주어진 재물에 하나님 몫이 있고 남의 몫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고,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재물을 섬기는 자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가? 재물을 섬기는 자인가?
작년 9월에 ‘김우수’라는 한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세상이 그에게 애도와 함께 찬사를 보냈다. 그는 고아출신이었다. 소년원을 자주 들락거리고 변변치 않게 살다가 방화미수범으로 감옥에까지 갔다 오고, 이후부터 짜장면 배달을 하면서 먹고 살았다. 그가 어느 날 어린이재단에서 발간하는 사과나무라는 소책자를 보고 생각한 바가 있어 적지만 자기 수입의 일부를 기부하기 시작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자기처럼 고아로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2006년부터 2011년 9월 23일 사고가 나기까지 한 달에 5만원에서 10만원 가량 형편대로 기부를 했는데, 기부액이 총370만원이었다. 쪽방에 살던 사람에게 결코 적은 돈이라 할 수 없다. 여기에다 종신보험 하나를 들어둔 게 있었는데, 알고 보니 보험금을 어린이재단의 불우한 아이들이 수령하도록 해둔 것이다. 그는 정말 행복을 배달하는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몫에는 ‘세 개의 몫’이 있다. 하나님의 몫과 내 몫, 그리고 타인의 몫이다. 재물을 섬기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면 인색함 없이 내 몫에 담긴 하나님 몫과 타인의 몫을 기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몫과 타인의 몫을 당연한 듯 뗄 줄 알아야 한다. 욕심 부려 내 몫을 좀 더 늘리고 더 가져본들 조금 더 편한 것 말고 퍽이나 다를 것도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심해가는 빈부 격차 속에 나눔이 메말라버린 사회가 가장 잔인한 사회라는데, 풍요와 빈곤의 묘한 어우러짐 속에 선한 사라마리 사람 같은 섬김과 나눔, 베풂이 아쉽고 목마른 시대이다. 따져 보면 처음부터 내 것이란 없는데, 이런 까닭에라도 나눔이란 실은 책임이고 의무가 아니겠는가! 진정한 나눔은 내 몫속의 타인의 몫을 사랑과 긍휼로 떼어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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