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카바’란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강아지 한 마리와 작은 램프 하나를 들고 여행을 떠났다. 길을 가다가 밤이 찾아왔는데 마침 빈가가 있어서 그곳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기 전에 ‘토라’를 읽으려고 램프를 켰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램프가 꺼져서 다시 켜지지가 않았다. 고장이 난 것이다. 성난 랍비는 하는 수 없이 잠을 청했는데, 갑자기 늑대가 나타나 강아지를 물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게 왠 일인가?’ 랍비는 투덜거렸지만 이내 분통을 가라앉히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게 또 왠 일인가? 이번에는 사자가 나타나더니 랍비의 당나귀를 잡아먹어버렸다. 랍비는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고 헛간 같은 빈가에서 끙끙거리며 온 밤을 새웠다. ‘아니, 이게 대체 왠 일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정말 한심하기도 하고,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이제 먼 여행길을 어떻게 할까?’하고 아카바는 투덜대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길을 가게 되는데, 마을에 내려가 보니 큰 야단이 나 있었다. 간밤에 도적떼가 침입해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다. 남자들을 다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 약탈해갔다. 그 순간 아카바는 깨달았다. 만약에 램프가 꺼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강아지가 늑대에 물려가지 않고, 당나귀가 사자에게 잡혀 먹지 않았더라면 지나가던 도적떼에 발각되어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원망하고 고민하며 투덜거렸는데, 이제와 보니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다. 랍비 아카바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루고자 했던 목표와 꿈이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애써 일궈온 삶이 무너져 내릴 때 실패와 좌절 앞에서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을 원망하고 고민하며 투덜거린다. “하나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불러도 대답 없는 하나님을 향해 다 죽을 것처럼 하소연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 고작 이것입니까?’, ‘대체 이게 뭡니까?’ 온갖 탄식을 쏟아내며 성을 내며 불평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자주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예비해두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기대하며 늘 이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습관처럼 내뱉는 불평과 원망이 줄어들고 탄식과 고민도 멈추게 될 것이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불행이 행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심각한 지경에 빠졌다가도 더 빨리 회복할 수 있고, 어렵고 힘든 모든 상황 속에서도 더 힘차게 일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보고 멀리 보고 크게 볼 줄 아는 영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인생도 세상도 세월도 크고 깊게,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역사와 은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 시야를 가지면 감사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잃은 것만 생각하는가? 만약 그 잃은 것 때문에 얻은 것이 더 크고 더 많다면 그래도 원망하겠는가? “하나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라고. 깨닫기만 한다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나의 꿈이 무너진듯하고 자주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을지라도 그 속에서 더 큰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면 감사하고 찬양할 일이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 인생, 당장 눈에 보이는 대로 불평하고 원망하고 고민하며 부정적으로 살기보다 믿음과 깨달음으로 살아감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하나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고민하는 대신 감사해보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깨닫지도 못하는 가운데 놀라운 일들을 또 행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