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3:42

택배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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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이 택배 문화 속에서 어버이날 새로운 풍속이 생겼단다. 이른 바 ‘어버이날 택배 효도 선물’이다. 이제는 지방에 계신 부모님들께 생화로 된 카네이션 선물도 문제없다. ‘택배 왔어요!’라는 말과 함께 카네이션이 도착하고 선물이 도착한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든 부모님의 심정은 어떨까? 마냥 좋기만 하실까? 그래도 부모님은 전화를 해주신다.
  “얘야! 카네이션 잘 받았다! 뭘 이런 걸 다 보냈니. 고맙다!”
  그러면 자식들은 또 그런다.
  “어머님, 아버님! 용돈도 온라인으로 부쳤으니까 맛있는 거 사드세요!”
  이런 모습이 요사이 어버이날의 새로운 풍속도란다. 택배 문화 속에 자리 잡은 새 문화코드를 그저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겠지만 부모님의 허전한 마음을 생각하면 썩 내키지는 않는 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적인 수고, 큰 은혜를 생각하면 효도 택배로 인사를 대신하는 어버이날의 새 풍습이 아무래도 석연찮고 아쉽기 그지없다.
  어버이의 사랑을 생각해보게 하는 두 생물이 있다. 하나는 가시고기라는 생물인데, 수컷 가시고기는 아버지의 헌신적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부성애의 좋은 표본이다. 이 가시고기는 산란철이 되면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산란 준비는 수컷의 몫이고, 산란장이 잘 준비되면 암컷이 와서 보기 좋은 곳을 찾아 알을 낳는다. 그리고 암컷은 유유히 사라져버리는데, 그때부터 수컷 가시고기는 알을 지키기 위해서 사투를 벌인다. 알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침입자들을 힘으로 몰아내면서 깨끗한 물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여댄다. 알이 부화되면 가시고기 수컷은 부화된 새끼가 멀리 나가지 못하도록 산란장 주변을 지키는데, 멀리 나가는 새끼가 있으면 입으로 물어오고 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이 사투는 약 보름간이나 계속되는데, 알을 보호하기 위한 수컷 가시고기의 필사적인 노력을 생각하면 눈물 나는 사랑,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마침내 새끼들이 커서 한 마리씩 산란장을 떠나가면 마지막으로 수컷 가시고기는 탈진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조용하게 울타리가 되었다가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 수컷 가시고기처럼 오늘 우리의 아버지들도 자식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다른 하나는 우렁이라고 하는 생물인데, 몸에다가 산란을 하는 토종 우렁이는 헌신적 사랑의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자기의 몸에서 부화된 새끼들을 위해 어미 우렁이는 자기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는데 새끼들은 어미 우렁이의 살을 다 파먹고 자란다. 마침내 껍데기만 남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 새끼들은 훌쩍 떠난다. 논두렁이나 고랑에서 우렁이 빈껍데기가 물에 둥둥 떠나다는 것은 천적들의 짓이 아니라 어미의 살을 먹이로 다 파먹은 새끼들의 짓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미 우렁이의 희생이요 사랑이었다.
  효(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이야기이다. 아들 부부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 여행을 갔다. 좋다고 따라나선 늙은 어머니, 그런데 다니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아들 내외가 사라지고 없었다. 버리고 간 것이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래도 이 늙은 어머니가 재치가 있었다. 길을 가던 재미교포를 붙들고서는 우리 집이 인천 부평인데, 내가 지금 여권과 가진 돈을 다 잃어버려서 어찌 할 수가 없으니 좀 도와 달라 간청했다. 그러면은 반드시 사례를 해드리겠노라 약속했다. 그랬더니 그 교포께서 그 노파를 모시고 미국에서 직접 한국 부평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부평은 친 동생의 집이었다. 아들 내외 집으로 가지 못하고 친 동생에게 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아들 내외에게 전화가 왔단다. 그리고 이모에게 엄마가 미국에서 죽었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 아닌가!
  십계명의 5계명은 ‘내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이처럼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명령이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행할 일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계명인 1-4계명까지를 제외하면 부모 공경의 계명은 사람 사이의 첫 계명이 되는 셈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부모 공경을 사람 사이의 첫 계명으로 두셨을까? 눈에 보이는 부모도 공경하지 않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쁜 세상 속에 택배 효도, 이 정도도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것만도 가상하긴 하다. 그러나 만약 택배 하나 보내고 그만이라면, 그것으로 효를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새끼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죽는 수컷 가시고기의 헌신과 사랑, 새끼들을 위해 자기 몸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준 어미 우렁이의 놀라운 희생과 사랑은 바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한다면 택배만 보내지 말고 택배가 되어봄은 어떨까?

  "아버지! 어머니! 저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