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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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최선입니까?" 인기 드라마 '스크릿 가든'에서 인기 배우 현빈의 빈도 높은 대사였다. 이 대사가 금세 유행어로 퍼져서 한 때 젊은이들은 말끝마다 "그게 최선입니까?"라고 말하며 놀았다. 따라 해본다는 재미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진 말이지만, 가만 한번 생각하면 마음을 진중하게 하는 강한 메시지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늘 이 유행어를 가지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누워서 침 뱉기인 줄 알지만, 사랑하는 한국 교회를 위하여 묻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냐고.
  오늘날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한국 교회에 아쉬운 점은 '회개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한국 교회가 변질되고 그릇된 모습들을 자성하며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바로 서는 모습 외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로 재도약하고 과거 민족의 소망이었던 교회의 위상을 회복할 길이 달리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아직도 '회복의 감(感)'을 못 잡고 있는 듯하다. 가끔 보면 조찬기도회나 구국기도회 등 교회의 대사회적 행사들을 연례행사처럼 치르는데 명목은 참 좋고 성과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을 잘 잡은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 방향과 해답이 과연 거기에 있을까? 그런 식(式)이 과연 최선일까?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자초했던 일단의 사건의 기억난다. 2006년 1월 19일 영락교회에서 모인 '기독교 사학 수호를 위한 비상 구국 기도회'였다. 7000명의 목회자가 모였었다. 삭발식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십자가 행진을 하는 등 사학 수호를 위해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행사였다. 문제는 십자가 행진이었는데, 한국 교회 사학 수호를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 같이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가겠노라'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려던 행진이었다. 그런데 이 행사가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문제의 요인은 십자가에 달았던 조그만 바퀴였다. 동원된 십자가는 2m짜리 큰 십자가였는데, 무겁고 큰 십자가를 보다 쉽게 지고 가기 위해 십자가 밑에 달았던 조그만 빨간 바퀴 한쪽이 빌미가 됐던 것이다. "저게 뭔가? 저 바퀴는 대체 뭐야? 무슨 십자가 행진이 저래?" '바퀴'를 문제 삼은 사람들은 어깨가 다칠까봐 대었던 '수건'도 문제 삼았다. 허나 행사 주최 측의 입장에서 볼 때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정황상 그런 모습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도 아니다. 사소하게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사소함이 한국 교회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사람들에게 욕 당할 짓(?)을 제공(?)한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좀 힘들더라도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이 있었다면 쇼가 아닌 의미심장한 행사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대사회적 전통은 민족 역사의 굴곡사마다 민중과 아픔을 같이 하면서 십자가를 묵묵히 졌다는 것이다. 민족의 아픔과 함께 십자가를 졌던 한국 교회, 그 때 사회와 국민들은 교회를 향해 찬사를 보냈었다. 목회자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도 절로 났다. 젊은이들이 교회로 몰려들고, 지식인들이 교회를 찾았다. 교회가 대한민국의 소망이고 미래라고 외쳤었다. 그랬던 한국 교회가 오늘에 이르러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으니 속이 짠하다. 국가 조찬기도회와 같은 각종 기독 행사들, 명목은 좋다. 그처럼 뭔가 보여주려는 모습도 필요하긴 필요하다. 그러나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한국 교회가 과거의 등불 같던 명성과 위상을 회복하고 당당히 설 길은 오직 회개에 달렸다. 안일한 편리주의와 이기심, 변질되고 타락한 모습들을 철저히 버리고, 나라와 민족, 사회를 품는 어머니와 같은 헌신적인 교회로 새롭게 서는 회개에 달렸다. 목회자들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부터 자기 십자가의 바퀴들을 다 떼버리고 오늘 바로 잡을 것을 잡아나가는 회개에 달렸다. 비난과 침체, 안일함에 빠져 있는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주님께서 물으신다. “진정 그것이 최선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