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3:36

빛을 좇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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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산하기구 유네스코에서 제작한 ‘미나 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동남아시아의 한 작은 농촌에 젊은 부부가 사는데 둘 다 문맹이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한번은 남편이 농약병에 붙어 있는 경고문을 못 읽고 작업하다가 위독한 상황에 빠지기도 하고, 못된 장사꾼에게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 받는 등 늘 이리저리 당하면서 비참하기 그지없는 삶을 산다. 그러던 중에 아내 ‘미나’가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미나는 글을 깨치게 되면서 농약병의 경고문도 읽고, 그동안 폭리를 취하던 장사꾼을 쩔쩔 매게도 만든다. 그렇게 어려움과 불편했던 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남편의 건강도 되찾고 점차 가정에 기쁨이 깃들게 된다.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있던 부부의 삶이 글을 깨치게 되면서 새롭게 열리고 환하게 밝아진다. 그 부부에게 글은 빛이었다.
  해외 유학생들이나 이민자들이 겪는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언어의 장벽이다. 낯선 나라에 언어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갔다가 언어 장벽 때문에 많은 어려움들을 겪는데, 그 어려움이란 참으로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미나 부부처럼 글만 몰랐을 때도 그처럼 캄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데, 언어 자체가 통하지 않으니 오죽할까!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으니 간단한 소통 하나 못해서 큰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하고, 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 학업에도 지장을 받는다. 슈퍼를 가도 불편하고, 낯선 길을 갈 때도 막막하다. 이처럼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언어 장벽 문제 때문에 공부하러 갔다가 끝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귀국하거나 이민 갔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그래서 적지 않을 것이다. 낯선 이국땅에서 언어 장벽으로 느꼈을 단절감과 고립감, 그 캄캄함 속에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언어 습득에 있음을 새삼 느꼈을 테다. 언어는 소통의 빛이고, 그 빛이 존재와 삶을 이끈다.
  언어적 지식이란 것도 이처럼 존재와 삶에 큰 빛이 되는데 사상의 빛은 말해 무엇하랴! 공주에 가면 우금치고개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동학농민전쟁 기념탑이 높이 솟아있다.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농민군이 전멸한 자리에 기념탑을 세운 것이다. 이미 아는 대로 동학농민전쟁은 고부군수 조병갑이라는 관리의 학정이 효시가 되었다. 그렇지만 부도덕한 관리의 학정은 발단의 계기였을 뿐 동학농민전쟁을 일으키고 이끈 것은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이었다. 농민군들이 낫과 도끼, 괭이와 죽창을 들고 용맹스럽게 싸우고 또 싸웠다. 그들이 그처럼 처절하게 싸우고 싸웠던 것은 ‘인내천’ 사상이라는 빛을 통해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본 까닭이었다. 사람의 권리를 찾고 사람다운 삶을 갈망했던 농민들은 인내천이라는 빛에 자기 목숨을, 어두운 자기 삶을 던진 것이다. 인내천 사상은 암울한 봉건사회의 억압 속에 어둡게 살아가던 농민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고 비추는 빛이었다. 그 사상의 빛이 어두운 인생들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지식이나 사상의 빛이 존재하고, 또 권력이나 재물과 같은 다양한 빛들이 존재한다. 그 빛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오늘처럼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각양각색의 다양한 삶과 찬란한 문화들을 이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인류를 비춰온 세상의 빛들이 아무리 찬란해 보여도 그 빛은 인류를 진정한 행복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이끌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안목을 끄는 세상의 다양하고 현란한 빛들에 현혹되어 그 빛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좇을 빛은 오직 한 빛, 세상을 구원하고 인류를 살려낼 예수 그리스의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