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7.09.15 13:35

선한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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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켈러라는 분의 저서 중에 ‘목자와 양’이라는 책이 있다. 팔레스타인 지형의 상황과 기후에서 양을 치는 방법들을 소개한 책인데, 이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자들이 양을 칠 때 자주 목초지를 옮겨 다니게 되는데, 목자들은 양떼를 새 목초지로 이끌고 갈 때 언제나 최단거리를 선택한다. 설사 그 지름길이 위태롭고 험난하더라도 주저함 없이 그 길을 선택하는데 이유가 있다. 바로 양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지독한 근시에다 후각도 둔한 양들을 이끌고 새 목초지로 이동할 때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상황에서 길이 좀 편하다고 우회하는 먼 길로 이동하다가는 자칫 뜨거운 광야의 타는 목마름을 이기지 못해 죽는 양들이 생긴다. 실제로 작열한 태양 볕이 내리쬐는 팔레스타인 지형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들이다. 그런 반면, 지름길은 아무리 험난하고 그 길에 힘겨움은 좀 있을지라도 잠시면 목초지에 도달할 수 있는 까닭에 아무리 연약한 양이라도 더위에 쓰러지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목자들은 좀 험난하더라도 그 길이 지름길이라면 갈증으로 인한 생명 상실의 위협 없는 그 길을 택한다. 양들의 입장에서는 편안한 길을 택하고도 싶겠지만 목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다. 만약 양들이 말이라도 하는 짐승이라면, 자기들의 목자가 왜 좋고 편한 우회 길을 놔두고 이토록 어렵고 힘든 길로 자신들을 인도하는지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자의 입장에서는 양들에게 무엇이 더 유익한지를 따져서 때로 어렵고 힘들고 험난더라도 그 길이 살길이요 유익한 길이라면 그 길로 가야만 한다. 피치 못할 숙명적 선택 앞에서, 험난한 팔레스타인 지형의 가파르고 협착하고 힘든 길로 사랑하는 양떼들을 이끄는 목자의 심정도 어찌 편하기만 하겠는가? 그럼에도 어려운 길목마다 목자들이 지켜 서서 잘 도닥거리고 이끌어주면 거의 모든 양들이 무사히 새로운 목초지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까닭에 목자는 견디며 간다.
  먼 길로 들어섰다가는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잃게 되기에 언제나 최단코스를 선택하는 이유에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목자들이 험난한 지름길을 택하는 이유는 그 길이 양들을 건강하게 키워내는 좋은 훈련 코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자는 조금 가파르더라도 지름길을 택하고, 험난한 지름길이라면 더욱 주저하지 않는다. 목자의 이 깊은 뜻을 양들이 어이 알까?
  때로 주님은 우리를 힘겹고 어려운 길로 인도하신다. 이해할 수 없는 자리로 이끄신다. 그럴 때 우리는 불평하고 원망을 늘어놓는다. 대체 왜 내 삶에 이런 고난이 닥쳐오는지, 왜 이토록 힘겹고 어려운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는지 원망하며 탄식한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고난과 고통 속에 힘들지라도 무기력하게 원망과 불평, 탄식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목자되시는 주님의 선한 뜻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주님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굴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어려움에 잘 맞서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한걸음씩 전진해 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주님 바라보며 믿음과 용기로 최선을 다해가다 보면 얻어지는 것이 있다. 성장과 성숙, 그리고 열매이다. 고난을 헤쳐 나가는 동안 성장을 얻고, 고통 속에 성숙하며, 기다림 속에 뜻하지 않은 열매까지도 거두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도달했을 때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고난과 고통,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내 인생의 '선한 지름길'이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