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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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세계관에 대하여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세계관이란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이라는 책에서 이야기의 형태로 혹은 실재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전재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몸담을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는 하나의 결단이요 근본적인 마음의 지향이라고 정의합니다. 세계관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영혼의 문제이고,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은 나와 인류 전체가 어디서 왔는지 혹은 나의 인생이나 인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할 때, 세계관은 나의 이야기 형태로 표현됩니다. 자연과학에서는 태양계, 진화론등 생명의 출현과 소멸의 줄거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창조, 타락, 심판, 구원으로 구성된 창조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말합니다. 그 중심에는 독생자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이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세계관은 과학적인 근거나 사상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만 완전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로 표현되거나 개념으로 정리된 세계관은 유신론, 이신론, 자연주의, 마르크스 주의, 범신론적 일신론, 뉴 에이지, 포스트모더니즘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이란 성경에 계시된 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적인 존재를 믿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인간에게 계시하셨고, 인간은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인간은 그분의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보다 우선하거나 그분과 동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인간의 모든 질서와 윤리의 기초가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잘살아 보세라는 슬로건으로 경제를 살리는데 목적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대에 와서는 웰빙으로 바뀌었습니다. 웰빙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잘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해 잘 살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웰빙이라는 말을 씁니까? 과거 잘 살아 보세는 목적 지향적입니다. 내게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 살고, 내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웨빙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잘 존재하고 있는가!”입니다.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쓴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본성을 소유와 존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소유형 인간은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을 인식시킨다고 말합니다. 존재형 인간은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소유를 통한 만족감은 불안하고 일시적인 모든 물질, , 명예, 권력,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소유"에 가치를 두고서 어느 순간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고 접하게 되면 더 이상 그 가치를 인정하기 힘들어 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그 존재 자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 자체, 아빠로서의 나, 남편으로서의 나, 자녀로서의 나입니다. 그러나 존재와 관계의 의미가 집착으로 변질될 때, 그 진정한 생명력은 사라지고 소유로 전락해 버립니다. 따라서 소유와 존재는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처럼 그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소유도 존재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행복의 본질은 분명히 다릅니다. 바로, 행복해 보이는 삶과 행복한 삶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소유와 존재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땅에서 나는 소유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잘 살아 보세가 아니라, 어떻게 성경적으로 살 것인가하는 존재로써 자신의 세계관을 세워야 합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참된 진리인 복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밟는 모든 삶의 자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다른 말로 사랑의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세계관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낮고 천한 자리에 내려와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고난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이라는 믿음을 심어 줍니다. 또한 사랑의 세계관은 창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른 뼈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생명의 공동체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면 공동체는 사랑으로 하나되어, 서로 합력하여 창조적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마른뼈와 같은 세상 가운데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비교할 수 없는 기독교 세계관인 사랑의 세계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육신 하셨듯이, 기독교의 세계관(사랑의 세계관) 역시 우리 안으로 들어와야 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우리의 진리를 확장시켜 세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