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질병관리본부)
코비드 19(COVID-19) 와 우리의 자화상
그동안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등으로 불려왔던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한 지 2개월 만에 공식 명칭을 얻었습니다. 코로나(Corona)와 바이러스(Virus), 질병(Disease)의 영문 머릿글자를 따서 조합한 '코비드(COVID)-19'다.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우한 또는 중국이 빠진 것입니다. 숫자 '19'는 이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2019년을 의미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하여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신종 바이러스와 같은 유행성 질환이 발병하게 될 경우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심리학적 혹은 사회학적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세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첫 번째, 병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이나 길거리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만나고, 생필품을 사재기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꺼리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을 지키며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우리 사회 안에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서로 악수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안부를 물으며, 정을 주고받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합니다. 두 번째, 병을 가진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영향은 특정 지역과 인종에 대한 혐오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손흥민 선수가 경기를 마친 후 인터뷰를 하던 중 기침하는 모습과 동료 선수들이 마스크를 쓴 사진을 합성하여 인종 차별성 댓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우한시에 있던 교민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이 방어막 설치하며 차단하려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세 번째, 책임자를 찾아서 처벌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임에도 시진핑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먼저 일어났다면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고, 반드시 책임자에게 처벌이 따릅니다. 이렇게 해야 대중은 심리적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2013년 개봉된 “감기”라는 영화는 이주노동자들에 의하여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특정 지역을 폐쇄하고,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영화입니다. 감기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였습니다. 20세기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은 마치 오늘날의 사태에 대해서 예견한 듯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소설 ‘페스트’는 특정한 질병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하나의 한계상황에서 벌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인물들은 각각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라진 병이라 여겼던 페스트가 알제리의 도시인 “오랑”에 찾아오면서 사건이 전개됩니다. 어느 날 아침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쥐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더 많은 쥐가 죽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러자 도시를 봉쇄하여, 도시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페스트는 정말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1340년대 유럽에서 약 3천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 의술로는 발병 원인도, 치료법도 알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이 내린 형벌’로만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마치 우리 현대의 모습과 아주 흡사합니다.
먼저 전염병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코타르”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페스트의 영향으로 신을 노하게 하면 안 된다는 대중심리로 사형이 연기됩니다. 그러자 코타르는 이 상황을 오히려 즐깁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환난을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되면서 생활용품이 품절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수요가 폭증하여 평소보다 몇 배의 가격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심지어 마트나 상점에서 일반인들은 구입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일부 제조업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염두에 두어 매점매석을 하거나, 밀수출을 시도하려다가 결국에는 경찰에 걸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하여 돈을 벌려는 꼼수를 기대한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파늘루”라는 신부는 페스트가 발병하자 첫 미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페스트는 악인들의 죄를 응징하기 위하여 신이 보내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주변의 상황을 보니 어린아이들이 죽는 것을 본 것입니다. 결국 신부는 생각이 바뀌어 이렇게 말합니다. “신이 보낸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결국 신부도 병으로 인하여 죽습니다. 우리도 신부와 같이 현상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심하게 왜곡할 수 있습니다. 이런 왜곡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를 향해서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중국이 공산주의라서 우한 폐렴이 그곳에서 생겼다.”, “중국이 우리 현 정부를 밀어주어서 하나님이 중국에 벌을 내리신 것이다”, “중국에서 일어난 기독교 탄압으로 인한 벌이다”, “많은 선교사님을 추방했기 때문이다”, “우상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이 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언들은 너무나 어리석고, 자의적인 해석이며, 전혀 성경에서 말하는 해석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환난이 주변에서 일어날 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돌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 반항적 태도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쥐의 주검을 발견한 “리유”는 의사입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타루”는 휴가차 오랑에 왔다가 페스트로 인하여 봉쇄된 상황에서 환난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 결국에 그도 병에 걸려 죽습니다. 이 소설에서 “리유”나 “타루”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만 이들은 의로운 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동하며, 자신이 갖고 있었던 믿음을 실천한 것입니다. 평론가들은 알베르 까뮈가 “타루”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은 “본질적인 선을 향한 의지를 갖고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서 그리고 알베르 까뮈의 소설을 통해서 이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봅니다. 알베르 까뮈는 제목을 ‘페스트’가 아닌 ‘감옥살이’로 하려 했다고 합니다. 질병과 가난과 전쟁과 죽음을 마주하는 현대사회가 하나의 감옥살이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삶이 까뮈의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소설 속의 어떤 인물과 같이 살고 있습니까?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고,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