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먹었던 빵 중에 ‘공갈빵’이라고 있습니다. 크고 먹음직스럽지만 안은 텅텅 비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공갈빵’입니다. 만약 누군가 저 사람은 ‘공갈빵 같은 사람’이라고 얘기한다면 그 사람은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텅 비어있는 허풍쟁이 같은 사람을 이릅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는 사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거푸집 같은 사람입니다. 겉은 그럴듯해도 속은 텅 비어있어 쓸모없는 허탄한 사람입니다.
20절에서 말하는 허탄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 속이 텅 빈 사람을 의미합니다. 무언가 영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은 속이 빈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이라는 말씀 안에는 무언가 활동할 수 없는, 무력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뜨개질을 힘들게 마쳤는데 코를 잘 못 떠서 지금까지 한 것을 모두 다시 풀어야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고 마르게 하신 것처럼 성도의 삶에 열매가 없다면, 결실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정한 가치가 결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열매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과일나무와 같습니다. 믿음이라는 나무에는 반드시 행위라는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만약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무력한 것이 됩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헛것이고 주님의 저주만이 있을 뿐입니다. 껍데기 신앙으로 살아왔던 우리 믿음의 나태함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 기자는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를 들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행함이 없는데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으며, 믿음이 없이 순전한 행함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없음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이 서로 결합되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써 증명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왜 갈등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자식을 향한 아비의 애끓는 심정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갈등이 그의 생각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로서 그 이름을 대대에 남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결단하고 행동했을 때, 그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무엇입니까? 행동 없는 믿음은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라합 또한 죽음을 각오하고 정탐군을 보호함으로 믿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만약 라합이 그 순간 두려움의 마음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면 오늘날 위대한 기독교의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이삭을 바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라합 역시 믿음이 없었다면 자신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정탐꾼에게 맡기면서 정탐꾼을 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행동, 라합의 행동은 그들의 믿음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믿음과 행함’ 이 두 가지는 결코 분리되어질 수 없는 완전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이 있을 때에야 서로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테네의 한 극장에서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좀 늦게 극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초만원이라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두리번거리고 서 있는 노인을 본 아테네인들은 "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여기저기서 수군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외국인석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스파르타인들이 벌떡 일어나 서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이때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테네인도 선(善)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 선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면, 그 아이의 품성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아무리 "주여, 믿습니다. 할렐루야!"하고 외쳐도, 정작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엉터리 믿음입니다. 구원받고 나서 삶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살아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은혜의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고보서
2017.09.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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