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말씀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것이 어떻게 범죄의 행위가 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은 어느 조항이나 다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조항이나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멋대로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키고, 지키고 싶지 않은 것은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법은 어떠한 조항이든지 반드시 다 지켜야만 법의 기능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을 제정하거나 수정 또는 폐기하는 부서가 입법부입니다. 사법의 운영을 담당하는 또한 사법부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권력 작용 가운데 행정작용을 담당하는 행정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민주주의의 기틀을 이루는 이 삼권분립의 세 부서가 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때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제정하고 법을 지킬 때도 있고 때론 지키지 않을 때도 있다면 이것처럼 큰 문제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모습이라면 도대체 누가 법을 신뢰하고 지키겠습니까? 수많은 법 중에 한 가지만을 지키지 않아도 결국에는 법을 어긴 것이 되어버립니다. 부모님의 말씀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불순종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또한 같습니다. 다른 100가지를 아무리 신실하게 잘 지켜도 단 한 가지를 어기게 된다면 결국 그것은 율법 전체를 어긴 것이 됩니다. 빈 집을 턴 10명의 도둑이 있는데, 9명에게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1명에게는 무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다른 계명을 아무리 잘 지켰다고 해도,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을 어겼다면 그것은 곧 율법 전체를 범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 중에 어떤 한가지의 조항이 우리에게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을 지키지 않고 지나간다면 결국 우리는 범죄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법 없이도 잘 살아갈 것 같은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물건을 훔쳤다면 재판을 받고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오늘 야고보기자는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율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면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입니다. 비록 한 가지이지만 하나님의 법 전부를 어긴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율법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철저합니다. 적당 적당이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 아래에서는 어떤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도 율법의 모든 조항을 그대로 다 지키는 일이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은 그 자체에 구원의 은혜를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를 통한 구원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사랑의 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악을 행하지 말아야합니다. 행함이 없고 말만 앞선 외식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오직 선을 행해야 합니다. “너희의 행실을 보고 너희를 비방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베드로전서 2:1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둘 다 신중해야 합니다. 믿음과 행위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아니라 신행일치(信行一致)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율법의 조항들을 다 지키려고 아등바등 하는 것은 좁은 신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틀의 개념에서 은혜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 이 큰 가르침에 그 모든 율법의 조항들이 다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최고의 법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 계명은 모든 율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장 20절에서 사도 요한은 진정한 가치의 율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오늘도 우리는 율법의 시각으로만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이웃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이웃을 향한 판단과 정죄의 시선을 거두고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큰 율법이요, 완성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