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케 하는 율법(1장 25절➀)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2,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복 받고 잘 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이라는 공적 질서 안에서 생활할 때 광야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법으로써 제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그 시기에는 당장 괴롭고, 자신들을 얽매는 것 같지만 사실 율법이야말로 그들의 삶을 지켜주는 삶의 기준이었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은혜의 통로였습니다. 
  율법에는 3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도덕법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지켜야 할 법인데 십계명처럼 무조건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둘째는 시민법으로 이스라엘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법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긴 법입니다. 셋째는 성결법으로서 제사법과 정결법이 있습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 밑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온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의 법보다 온전한 법은 없습니다. 사랑의 법을 능가하는 법은 이 세상에 결코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율법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이 율법을 두고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율법 자체도 온전한 법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완성은 곧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들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율법을 온전히 이룬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율법은 사실상 율법의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위한 율법이 오히려 사람을 얽매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본래의 뜻을 벗어나서 형식적으로만 지키는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온전한 법을 불구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하게 만들기 위해서 주셨던 법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꽁꽁 묶어 놓는 속박의 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새로운 가르침은 기존의 가르침과 달랐습니다. 율법이 갖고 있던 모든 제한과 속박에서 자유케 하는 말씀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형식이 아니었고, 내면적인 사랑이 승화된 법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감싸주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법이었습니다.
  율법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으라’고 말합니다. 덮어주는 것이 없고 용서해 봤자 2~3번, 베드로가 말한 7번 정도의 용서로 이해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지 절대 방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간섭하시고 그리스도가 지켜주시는 능하심 안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의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섭을 내 삶의 자유를 속박하여 가로막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통한 하나님의 간섭이 있는 자유야말로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께 구속되었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어린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간섭은 억압하기 위한 간섭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 간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간섭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요 복음입니다. 이것은 나를 강하게 하고, 부하게 하고, 능하게 하는 법입니다.
  이 복음 안에서, 진리 안에서, 온전한 율법 안에서,강하고 능한 승리와 영광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