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유혹을 주장하신다는 거짓 생각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악으로 시험하시는 일에 없는 반면에 모든 좋은 것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다고 17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주시지 않는 대신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보내주시는데, 하나님의 은사와 선물은 온전하고 유익한 것입니다.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각양 모든 은사는 사람을 악으로 유혹하는 것과 같은 좋지 못한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본 절이 증거 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선물’은 은사의 결과, 즉 은혜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행위 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행동은 선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 역시 선한 것으로서 불순하거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라고 고백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무리 온전하고 선하다 할지라도 그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선하지 못하다면 그 선물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비추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충성과 봉사도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경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나름대로는 많은 재물을 드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마음이 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선하고 온전한 모든 은사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본문은 ‘빛들의 아버지’시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모든 빛들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어두움즉, 거룩하지 않은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모든 빛들의 근원이시며 빛 자체이시며 모든 빛 중의 빛이십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곤란에 빠뜨리거나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거나 결코 어둡고 불행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NIV 영어성경에서는 헬라어 원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하늘의’라는 뜻인 ‘Heavenly’라는 말을 빛(light) 앞에 첨가하여 “the father of the heavenly light"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빛이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암시해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빛들의 아버지라는 말은 2가지 의미를 갖게 되는데, 하나는 빛들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 창조하신 빛들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온 세상의 빛, 곧 물리적인 빛이든 영적인 빛이든 모든 빛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내려오나니”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사와 은혜는 주셔야만 받는 것입니다. 결국 은사와 은혜는 하나님께서 내려줘야 오는 것이지 인간적인 신앙의 노력으로서 얻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은사를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자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다시 거두어 가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만과 자랑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받은 은사들은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은사는 더욱 빛이 나야합니다. 어두움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고 모든 부정한 것들을 밝혀 세상의 희망이 되는 은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모든 은사를 교회를 위해 풍성히 받기를 사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결국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온 이 은사는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귀히 쓰여져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