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과 슬기로운 자(29장 7-8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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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본절에서 ‘알아준다’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앞에 나오는 말은 히브리어 ‘요데아’이고, 뒤에 나오는 말은 히브리어 ‘다아트’입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들은 주로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시할 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나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고아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돌보아주는 일, 죽을 위기에 놓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회복시켜 주는 일, 법정에 나가서 억울한 일을 당한 피고인을 위해 증언하는 일, 그리고 장애자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일 등을 묘사할 때 이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은 하나님처럼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더 큰 축복으로 채워주시고, 그들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에게 깊은 관심을 갖지만, 악인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할만한 지식이 없습니다. 의인은 자신뿐 아니라 이웃의 상황도 잘 이해하지만, 악인은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의 야심을 채우는데 모든 생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악인은 자기 세계에 갇혀 살아갑니다. 악인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 마땅히 자신이 뿌린 것을 거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많은 것을 쌓아놓고도, 자기 옆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얻은 소득에 대해서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이 얻은 것은 모두 다 자신이 탁월해서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들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는 형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통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낭비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은 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리 후회해도 그들에게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부러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거만’은 히브리어로 ‘라촌’입니다. 이 말은 원래 ‘입을 삐죽이다, 비웃다’란 뜻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는 교만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조롱하며 굴욕감을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들은 정당한 권위에 복종하기보다는 항상 불평을 말하며 사람들을 선동하여 분란을 일으킵니다. 본절은 항상 타인과 불화를 일으켜 사회를 어지럽히는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말과 행동으로 불화를 없게 하며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는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교만한 자를 싫어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룩한 지혜를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이기적인 야망이나 탐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하고, 진노한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켜 줍니다. 거만한 자와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이러한 슬기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룩한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높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