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본절은 원수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복수하는 것을 금하고 오히려 사랑으로 그들을 돌볼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북이스라엘을 침범하다가 눈이 멀어 사로잡힌 아람 군대에게 음식을 주고 아무런 보복행위를 취하지 않은 채 돌려보내게 한 사실은 바로 이러한 교훈에 따른 행동입니다.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이 말씀은 원수에 대한 선한 행동으로 말미암는 구체적인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은 원수에 대한 선한 행동이 그 원수로 하여금 마음을 뜨겁게 하는 깊은 회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행동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상급을 약속받는 귀한 행동입니다.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원수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나의 원수와는한 하늘 아래에서는 결코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죽든 원수가 죽든 결판을 내야 한다고 들으셨을 겁니다. 이를테면 부모를 죽이거나 가족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자연스레 원수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과 내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 보아도 반대되는 이 관계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내 가족, 내 자녀, 내 아내, 내 남편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고, 가장 아끼고, 가장 사랑하는 이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서로에게 섭섭한 것이 있고, 아쉬운 것이 있고,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내 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원수가 되고 맙니다. 원수 같은 남편, 원수 같은 자녀... 물론 미운 정이 들어 괜시리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서로 원수가 되어 미워하다가 상처뿐인 이혼을 하고, 가정이 깨어지고, 유산 문제로 형제끼리 칼부림을 하며, 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를 죽이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반면에 내 가족을 해하고, 내 아들을 유괴하고, 내 부모를 죽인 철천지원수라서 반드시 죽이고 싶은 그 사람도 어떤 사건이나 일이 계기가 되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고, 새로운 가족으로 하나 되는 모습 또한 우리가 보지 않습니까? 1956년에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5명의 젊은이들이 남미의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그들의 창에 찔려 순교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그들의 아내들이 선교훈련을 받고 그 부족에게로 다시 들어가 그들을 복음화 시킵니다. 남편을 죽게 만든 원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었습니다. 용서도 사랑도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용서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새 힘과 능력을 주실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갚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행위대로 은혜 갚으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통쾌한 복수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용서이며, 사랑입니다.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 미움으로 인해 때로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수로 인해 아직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십니까? 이미 죄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았던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유함을 얻은 우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증오하는 원수는 전혀 상관없고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하나 되라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우리의 미움과 우리의 원한을 용서와 사랑으로 바꾸어 주시는 강하고 능하고 온전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시는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언서
2017.09.14 14:01
사랑하는 사람 = 원수 된 사람(잠언 25장 21-22절)
조회 수 1467 추천 수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