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로운 재판(24장 23-26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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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이 구절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편애하는 얼굴을 나타내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편애하는 얼굴"은 공정하지 못한 편파적인 판결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재판관들은 공의를 시행하기 위해서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인에게 적절한 처벌을 내리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고도의 지식과 판단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든지 재판을 맡을 사람들은 고도의 지적인 훈련과 판단력에 대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때로 이러한 재판관들도 실수하여 그릇된 판결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재판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일부 재판관들은 일부러 한 쪽의 낮을 보아주고 편벽된 판결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잘 아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편벽된 판결을 내릴 수 있으며, 때로는 뇌물로 인해 불의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권력자나 폭력배의 위협을 인해 판사들이 그릇된 판결을 내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지 판사들은 공의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내부와 외부 세력에 의해 고의로 공의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압력에 굴복하여 불의한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은 백해무익합니다. 이런 재판관은 차라리 재판관이 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판사가 되어 법정에 서면 재판관은 어떠한 위협과 희생이 있어도 공의를 시행하는 파숫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4-25절은 23절에서 말한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을 옳다고 하는 자는 저주와 미움을 받게 되나, 악인을 견책하는 자는 기쁨과 축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판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신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공의를 시행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재판장이 자기 권한을 남용하여 악인에게 무죄를 선언하고 의인을 정죄하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재판관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재판관이 지혜가 부족할 때에 선악을 분명하게 분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판장은 원고 측과 피고 측의 주장을 듣고 선악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재판관이 고의로 불의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때로 재판관은 아는 사람이나 뇌물, 또는 힘 있는 자들의 위협으로 인해 그릇된 판결을 내리도록 압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재판관이 인정과 뇌물, 그리고 위협을 극복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악인을 정죄하고 견책해야 합니다. 이러한 재판관은 마음에 기쁨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과 백성들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법관이 우리는 최고의 명예는 공정한 판결을 내릴 때에 얻을 수 있습니다. 26절의 "바른 대답"은 1차적으로 법정에서 판사가 법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이 말은 법정에서 증인이 자신이 본대로 정직하게 증언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삶 속에서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올곧은 믿음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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