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24장 19-20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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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 메도우의 ‘분노의 극복’이라는 책에서 분노를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신체와 정신에 힘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게 많은 사람들은 분을 내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정화하실 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실 때, 율법에 갇혀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분노를 표출하셨습니다. 물론 의로운 분노이긴 하지만 예수님께서도 분노의 감정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개인적인 원한이나 악의적 감정을 품으면 죄가 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고 야고보서 1:20절에서 말씀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몫으로 맡겨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사울 왕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2번이나 주어졌지만 그 기회를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원한의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울분과 불의한 분노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행악자는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으로 타인을 해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사람으로서 자기 구실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마치 ‘도가니’라는 영화에 나온 파렴치한 교장과 같이 말입니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사는 모습을 보면 참기 어려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19절은 그러한 경우에도 분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0절에 그 이유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솔로몬은 이 말씀을 아버지 다윗의 시편인 37:1절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무슨 일에서든지 분을 품거나 불안해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는 너그럽고, 부드럽고, 온유합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악한 자들을 하나님의 공의 징벌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고 묵묵히 기다리는 것도 지혜입니다. 세상이 악인들과 행악자들에 의해 움직여 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오해일 뿐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질서에 의해서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 것 같이 보여질까요? 조폭, 마약 밀매자, 부정 부패자, 아동 성폭행범, 연쇄살인범 등과 같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시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잠시동안 참고 두신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행악자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결국 그들의 삶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밝은 미래가 아닌 암울한 내일만 있을 뿐입니다. 악인의 등불은 꺼집니다. 악인의 부요함과 번영은 잠시 빛나는 것 같지만 영원히 꺼져서 어두움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번영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지속성도 없습니다. 지나가 버릴 뿐입니다. 사라질 뿐입니다. 마태복음 6:2절의 말씀처럼 악인들은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습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것도 소멸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감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능하게 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악인의 형통함 속에서도 분노를 유발시키는 행악자들 앞에서도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오. 오직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 주시는 형통함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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