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형통함(24장 1-2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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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워하다‘라는 말은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거나 가지고 싶어하다.”라는 뜻입니다.
1절에서 ’부러워하다‘는 히브리 원어로 ’카나‘인데 “질투심이 많은, 샘을 내는, 매우 열성적인”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떠한 대상이 이룬 세속적인 성공을 얻기를 원하는 마음을 나타낼 때에 사용합니다. 또한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한다는 표현은 단순히 부러워하는 차원을 넘어서 악인의 행동에 동참해서 그와 같이 죄를 범하기를 원한다는 심정을 드러내 주는 말입니다.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근묵자흑’이라 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과 가까이 하면 나쁜 버릇에 물들게 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친구, 좋은 교사, 좋은 선배를 만나라고 말해 주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은 상호간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영향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형통한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는 형통함을 누려야 합니다. 악인과 함께 하면 듣기 싫어도 악한 말들을 들어야 하며, 하고 싶지 않아도 나도 몰래 동참하게 되기도 합니다. 오해다, 착오다. 말할 수는 있겠지만 악인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사실은 악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번영을 부러워하며 그들과 행동을 같이 하여 악한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십시오.
  악한 자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타인을 멸망시키는 패역한 행동을 서슴치 않습니다. 악인은 강포를 그 마음속에 품습니다. 성질이나 언행 따위가 우악스럽고 사나운 것을 ‘강포’라고 합니다. 마치 투견처럼 물어뜯고 싸움을 즐기는 사람과 함께 있어 좋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언어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옵니까? 재앙을 말하는 입술에서 무슨 선함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재앙을 쏟아놓는 말에서는 그 누구라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과 중상모략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멸망시키는 악한 말들뿐입니다. 따라서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악한 행동에 대한 보응으로 주어지는 완전한 멸망까지도 함께 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인과 사귀지 말며 그들과 멀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함의 은혜를 누린 요셉을 기억하시며, 그런 믿음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순간의 이익과 실리로 인해 값비싼 댓가를 치루지 마십시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의 이 힘 있는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면 지혜와 분별력이 생깁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은 결코 악인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는 의인들과 함께 하나님만을 바라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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