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농경 상황은 우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른 비가 내리는 9, 10월에 밭 갈이를 시작하여 10, 11월에 파종하고, 이듬해 4, 5월에 추수합니다. 오늘 4절의 말씀은 이런 독특한 농경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밭 갈이를 이른 비가 내리는 가을에 하는 것입니다. 오늘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한다’ 말씀하시는데, 가을이면 벌써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추위 속에 더 게으름에 빠지기 십상인데다, 가뜩이나 추위와 상관없이 항상 게으른 자라면 추울 때야 더 말할 것 없이 게으름에 빠집니다. 죽어도 일어나기 싫어하고 일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밭 갈러 나가기를 자꾸 미루다가 결국 파종할 시기를 놓치는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추수의 기쁨이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땅히 일해야 할 때 일하지 않는다면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난과 멸시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하기도 합니다. 부지런한 것이 본래 온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본래 부지런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데, 부지런할 때에만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나태하고 게으른 것은 온전하지 못한 나쁜 습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으르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보람이란 찾아보기 어렵고, 의미를 생각하는 삶이란 기대하기조차 민망합니다. 그런 고차원적인 것일랑 그만두고 게으른 자는 게으름 때문에 인생에 당장 불어 닥쳐오는 시련조차도 뜬 눈으로 보면서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게 됩니다. 오늘 지혜자의 인생수업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4절,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이것이 게으름뱅이가 맞이할 최후의 심판입니다. 거렁뱅이 신세, 이것이 게으른 자에게 떨어질 최후 심판입니다. 오늘 지혜의 말씀은 비단 먹고사는 문제만을 염두하고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리 인생이 비참해져도 그것이야 세월과 함께 끝날 일입니다. 오늘 지혜자는 인생의 가을에 영혼 밭갈이를 얼마나 부지런히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인생의 가을이 왔는데도 밭가는 것을 게을리 하면 인생의 겨울, 영혼은 흑암 속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밭 갈고 씨를 뿌려 성령의 거룩한 열매를 부지런히 맺으십시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거두는 온전한 자가 되어 복을 받고 칭찬과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4절의 게으른 사람과 달리 5절의 명철한 사람은 부지런할 뿐 아니라 모략을 가지고 일합니다. ‘모략(히, 에차)’이란 문자적으로는 ‘상대방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악한 계획’이지만, 성경에서는 종종 지혜와 상통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5절,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내느니라” 명철한 사람,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긍정적 의미의 모략을 길어냅니다. 본질과 현상, 사람과 사물,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판단으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고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자의 모습입니다. 그는 일해야 할 때를 알고 일하며 쉬어야 할 때 쉴 줄 압니다. 명철자에게 농사의 임무가 주어졌을 때 가을의 밭 가는 시기와 파종 시기를 그는 놓칠 까닭이 없습니다. 이처럼 모략으로 사는 지혜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의 중요한 시기를 놓치지 않을뿐더러 인생의 중요한 시기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설사 ‘모략’이 문자 그대로 부정적 의미의 모략이라도 오늘의 말씀은 받아들이는데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명철자는 자신을 해하기 위한 누군가의 마음에 숨은 모략도 길어낸다는 뜻입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공격과 확대된 누명, 은밀한 중에 진행되는 악한 계획을 알아차리고 대처하는 까닭입니다. 선한 지혜는 언제나 악한 모략보다 앞섭니다. 그 지혜를 붙들고 승리하는 거룩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