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 말씀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보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 됩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비. 동정, 긍휼히 여기는 것으로써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내적원리입니다. 마음으로만 감정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행동을 함께 가진 것을 뜻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긍휼과 동정의 마음으로 행동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이스라엘의 전통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추수 때나 과일을 수확할 때 그들을 위해서 일부로 수확물들을 조금 남겨 둡니다. 아브라함도 부지 중에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긍휼의 방’이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어두운 방으로 되어 있는데, 누가 들어가고 나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었고, 이 방에는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물질과 곡식 등을 두고 갔습니다. 나중에 제사장들이 이것들을 가져다가 불쌍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구제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라.”고 야고보서 1:27절 말씀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경건은 고와와 과부를 돌보는 긍휼의 마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은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고, 십분의 일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구제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이 선행이 곧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빌려 드렸다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헌금의 개념도 동일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천배, 만배로 다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받으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인간에게 빌리시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께 물질을 빌려 드리는 것과도 같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요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내가 빌려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제하고 나누어 주고 베푸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선교 자체가 나눔이고 베품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도움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대접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힘을 다해서 하겠습니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도울 수 있는 시간이 있고, 물질이 있는데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갚아주신다’는 말씀은 충만한, 온전한, 꽉 채운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온전하게 가득가득 꽉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바로 이익이 돌아오지 않고 손해만 본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한 사마리아와 같은 선행과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의 참다운 이웃이 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진정한 이웃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시면 내 자신도 은혜의 삶을 살지만 후손들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은총입니까?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 섬김의 마음, 베풂의 마음, 나눔의 마음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