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보다 친밀한 친구(18장 22-24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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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22절에 등장하는 ‘아내’라는 히브리어 단어 ‘이솨’는 일반적인 의미의 ‘부인’, ‘아내’라는 말이 아니라 ‘정숙하고 현명한 아내’를 의미합니다. ‘아내’ 즉 ‘이솨’를 얻는 자, 정숙하고 현명한 아내를 얻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라고 지혜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숙하고 현명한 아내를 얻은 것 자체가 복인 동시에 그와 같은 아내로 인하여 계속 받을 복까지 포함해서 ‘복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와 같은 아내를 얻겠습니까? 그와 같은 아내를 얻을 수 있는 인격과 성품, 가치관을 가진 자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은 나는 변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속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그릇을 준비한 자에게 당신의 섭리 가운데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가난한 자는 자주 죄인 취급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부자 앞에서 무릎 꿇고 긍휼을 호소하는 가난한 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가난한 자에게는 재물이 없고 부자에게는 재물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재물이 많은 부자는 여유 속에서 엄한 말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생활의 편리를 위해 만든 ‘돈’이라는 것이 이제는 그 편리를 넘어 사람의 힘을 과시하는 ‘재력’이 되고, ‘무기’가 되어버린 현실은 참 으로 안타깝습니다.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을 합니다.” 이와 같은 애처로운 모습이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이겠습니까? 세월이 흘러 시대는 변해도 가난한 자의 비애와 부자의 비정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재물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도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무엇이 지혜이겠습니까? 많은 재물을 가졌다 해서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시에 재물이 없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나 재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사람의 기준일 뿐이지 하나님의 기준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믿음을 보십니다. 진심을 보십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가난한 자와 부자를 나누는 습관을 버리고,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 하나님께 겸손히 모든 것을 맡기는 신실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친구가 많은 것이 좋겠습니까? 적은 것이 좋겠습니까? 친구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친구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닙니다. 많은 친구들 중에는 오히려 해가 되는 친구도 있고, 친구로 여겼으나 실은 친구가 아닌 친구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는 때로 없느니만 못하여 손해를 끼치고 해를 가하게 됩니다. 그런 반면에 적은 친구를 가졌더라도 오랜 세월 교제해 온 친구들 중에서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도 있습니다. 친구의 가치와 그 무게를 어찌 숫자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오늘 잠언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셨다고 해서 종으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친구로 인정하고 대하십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은 친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늘 곁에서 동행해 줄 뿐만 아니라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 주는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예수님과 늘 동행하며 함께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지혜일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아름답고 복된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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