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철한 자, 공의로운 재판관(18장 15-17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합니다. 우리의 귀가 얼마나 생활에 도움과 편리를 주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귀는 들을 수 있는 주파수대가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의 가청 주파수는 20Hz~20000Hz입니다. 너무 큰 소리도 너무 작은 소리도 듣지 못 합니다. 산사태나 지진이 있을 때 미리 예측하지 못 해 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은 직감합니다.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는 진동을, 파장을 느끼기 때문에 미리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재해 때 주인을 구하는 개와 같은 동물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동물들은 다 듣는데, 정작 사람만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잘 듣고 잘 깨닫고, 남들이 못 듣는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도 헤아리고 깨닫지만, 어떤 그리스도인은 거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 하는 영적 귀머거리와 같이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향해서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스라엘에 못 듣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까? 귀머거리 동네이기에 그렇습니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발음 되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그 말 속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못 듣는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귀가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막힌 귀가 열려야 합니다. 영적 주파수를 높혀야 합니다. 영적 안테나를 높이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갈급한 시대 속에, 영적으로 기근한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영적인 귀가 열려 있을 때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선물은 사심 없이 드리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는 예물입니다. 이러한 선물은 문제를 속히 처리하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쳐 뇌물과 혼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그럴까?하는 의심이 들지만,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뇌물인지 모르고 단순한 선물인지 알고 받았다고 변명하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결국 뇌물수수죄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지나친 선물, 부담이 되는 선물, 대가성이 있는 선물 이것들은  모두 뇌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직과 양심이 요구 되어지는 시대입니다. 우리의 욕심과 정욕을 내려 놓을 때 선물과 뇌물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법정 논쟁에서는 원고와 피고 양측의 말을 다 들어야 진위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재판관은 원고와 피고의 진술을 다 경청한 후 공의롭고 신중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양측이 모두 납득할 수 있고 순복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먼저 이야기를 하고, 크게 목소리를 높이는사람이 이기는 것 아닙니다. 때로 세상 법정에서 이러한 편법과 입김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습니다. 위증도, 거짓 증인도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살이 가운데 억울한 일, 답답한 일들이 많습니다. 힘도 없고, 배경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고 더 초라해지고, 더 외롭습니다. 모든 길이 다 막혀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기도의 문을 통해 전능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구한 것을 받고 찾는 것을 찾아내고 두드리는 모든 문이 활짝 열리는 은혜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Articles

3 4 5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