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신 주인, 왕(18장 11-12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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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절에서 솔로몬이 고백한 말씀입니다.
11절 말씀은 앞절인 10절 말씀과 대조를 이룹니다. 의인에게는 하나님이 견고한 망대가 되시지만 부자에게는 재물이 견고한 성이 됩니다. ‘여기느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마스키토’인데 비현실적으로 상상하는 것, 허구를 위미합니다. 자신이 쌓아올린 재물이 성과 같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착각하지만 오히려 재물이라는 성에 갇혀 스스로 몰락해 버리고 맙니다.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안전하게 나를 지켜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견고한 성 안에 내가 갇힐 수 있습니다. 그 안전하고 든든한 성이 오히려 나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그릇을 통해서도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양의 밥그릇, 국그릇은 좁고 홈이 있습니다.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습니다. 폐쇄적인 형태의 그릇입니다. 그래서,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안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접시는 넓고 홈이 없습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음식을 먹습니다. 개방적인 형태의 그릇입니다. 나의 밥과 고기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국주의 시대에 서양이 동양을 압박하고 압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부자는 그가 섬기는 주인이 물질입니다. 재물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힘이고, 험한 이 세상에서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 견고한 성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현실과는 다른 자신의 착각과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디 부자만 그런 착각 속에 살아갑니까? 건강을, 권력을, 명예를, 인맥을, 행복을 주인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주인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지금 나의 참된 주인이 무엇입니까? 안전하다고 평안하다고 견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착각일 뿐이고, 그것은 상상일 뿐이고, 그것은 허구일 뿐입니다. 생명줄이 아니라 썩은 동아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내가 할 수 있고, 내게 그럴 자격이 있고, 내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실패하고, 패배하고, 멸망 당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의 도를 가르쳐 주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모델을 예수로 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모델로 삼기 이전에 구원자로 섬기고,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번이나 물을 먹었습니다. 지금 당장 이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이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은 자유영, 배영,평영, 접영 등과 같은 수영법을 알려줄 수 있는 수영코치가 아니라 나를 물에서 안전하게 구원해 주는 안전요원,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를 구원자로 확신한 후에 그 분을 따라 살기 위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영적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십니까? 세상의 모든 헛된 것들 내려놓고 겸손의 왕이신 예수를 붙들고, 의지하며 나아가시는 귀한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