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가 한 말의 결말(18장 6-8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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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은 미련한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악한 말이 일으키는 결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게 됨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툼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치 꺼지지 않는 불처럼 점점 더 크게 타올라 사람들 사이를 이간시키고 싸우고 다투게 하며 심지어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악인들의 무지한 말, 무책임한 말, 악한 말은 너무나 쉽게 내뱉어지지만 사람들 사이를 이간하여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립니다. 마치 불을 지른 자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길을 감당 못하는 것처럼 악한 자는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내 뱉음으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관용하며 서로 돌봐야 할 사람들 사이를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무지한 말, 무책임하고 악한 말은 단지 다른 사람들만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6절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에게 매가 되어 돌아옵니다. 이는 단지 회초리나 체벌을 위한 막대기 정도의 매가 아닙니다. 그것은 뼈를 꺽고 몸을 부수는 결과를 일으키는 혹독한 매들을 지칭합니다. 결국 이러한 악인들의 미련한 말은 7절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그의 멸망이 되고 영혼의 그물이 되고 맙니다. 즉 자신의 완전한 파멸과 그 삶의 황폐화, 그리고 영원한 심판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마치 사냥꾼이 쳐놓은 그물이나 덫에 걸린 동물이 잔인하게 도살되듯이 악한 말을 끊임없이 내밭는 자는 아무런 긍휼도 없이 철저한 파멸에 던져지게 됩니다.
  요즘 중동사태를 보면서 특히 철권정치를 휘두른 카다피라는 인물을 보게 됩니다. 수 십년동안 국가원수의 자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백성들의 피폐한 삶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말로서 수많은 공약들만 늘어놓더니 결국 리비아사태라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과 행동 모두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유익하게 만드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처와 빈곤과 무력함을 안겨다 주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내받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로 저지르는 범죄의 함정과 위험입니다.
8절에서 솔로몬은 말에 대한 일침을 놓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중상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중상모략’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의 경우에는 ‘고자질 하는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한편 ‘별식과 같아서’라는 표현은 ‘개걸스럽게 삼키다’라는 의입니다. 우리 속담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의 의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왜 중상모략을 별식에 비유했을까요? 별식이란 한 번 먹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꾸 먹고 싶게 하는 마력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먹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먹고 싶게 사람을 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보면 소위 ‘맛있는 집’, ‘소문난 집’을 계속 찾아 다니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한 별식이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상모략을 계속 하게끔 하고 어디에 걸리는 것도 없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 곧 타인을 비방하고 정죄하고 그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말은 대개는 그 당사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안겨주게 마련입니다. 자기는 별식처럼 먹어치운 것이 타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겨주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성도들이 극도로 경계하고 피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 약점을 다 아시지만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으시고 감싸시고 용납하시며 그 모든 것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옮겨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타인을 배려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칭찬하고 그의 장점을 나타내는 말을 주로 해야 합니다. 이제라도 남을 깎아 내리고 중상하는 말을 하려거든 좋은 말, 은혜로운 말,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