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선하고 지혜로운 왕은 악을 미워하고 악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왕권을 오용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이 행하지 못하면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더 나아가 왕권이 박탈됩니다. 사울 왕의 몰락을 교훈 삼아야 합니다. 왕의 권위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의롭게 하나님의 위임하는 일들을 감당할 때 그 왕권과 보좌도 든든해집니다.
12절이 왕 자신에 대한 공의의 실행을 말한 것이라면 본절은 공의롭고 합당한 진언을 올리는 신하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진언은 그것을 듣는 왕으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과 치리를 행하도록 하는 까닭에 결과적으로 기쁨과 만족을 갖게 됩니다. 신하는 왕을 위하여 바른 조언과 충언을 해야 합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습니다. 왕도 귀에 듣기 좋은 말만 귀담아 듣는 것이 아니라 많은 백성들을 위한 옳은 일에 주목하고, 치리해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충신을 가까이 둔 왕은 나라를 잘 치리하지만, 거짓과 아첨을 일삼는 간신을 가까이 하고 등용할 때는 자신은 물론 백성까지도 다 같이 멸망당하게 되는 끔찍한 결과가 주어졌습니다.
간신은 겉으로 볼 때는 왕의 비위와 마음을 헤아리는 것 같지만, 왕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자이기 때문에 경계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강력한 군주제, 강력한 왕권이 있었던 시대에는 왕의 말이 곧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제군주제 사회에서 왕을 진노하게 하는 행위는 즉각적으로 무서운 죽음의 형벌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왕이 아무리 진노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지혜로 왕을 평안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게 한다.’는 것은 ‘덮어서 드러나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의 사자와 같은 왕의 진노를 편안하게 하는 자와 말로 지혜롭고 명철한 자입니다. 반면 왕의 진노를 일으키는 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지혜가 없기에 진노를 더 불러오기만 합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내면을 대변합니다. ‘희색’은 기뻐하는 얼글빛을 말합니다. 히브리적 개념상 본 구절은 왕의 내적상태로 지극히 평화롭고, 충족해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왕의 희색은 앞서 언급한 왕의 진노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늦은 비’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3,4월경에 내리는 비로 추수기에 내려 곡식을 여물게 하는 이로운 비입니다. 왕의 은혜가 백성들에게 평안함과 풍요로움을 안겨준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신하, 종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가릴 수도 피할 수도 없습니다. 나 자신을 속이고,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입술과 말고 삶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공의롭고 지혜로워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웃게 만들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복된 삶이 되기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