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을 버리라(13장 18-20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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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 있을 결과와 경계를 받는 자의 결과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훈계는 훈련하다, 훈계하다, 가르치다, 징벌하다 에서 유래했으며, '훈련, 훈계, 징계, 징벌'을 의미합니다. 또한 '징계'의 뜻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훈련, 훈계' 특별히 자녀가 부모에게, 사람들이 하나님께 훈계를 받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먼저 훈계를 저버리는 자가 가난하여지고 수치를 당함을 밝힙니다. 이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훈계의 고삐에 매여 있으며 훈계의 재갈을 물고 있음에도 이것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스스로 풀어버린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자는 궁핍과 수욕이란 또 다른 고삐와 재갈에 물리게 됩니다. 하반절에서는 경계를 받는 자가 존영을 얻는다고 선포합니다. 자신을 견책하는 말이나 징계를 본성적으로 좋아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것이 비위에 거슬리더라도 이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는 존영을 얻게 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선한 "훈계를" 마치 자기의 명예에 대한 치욕이나 자기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라도 되는 듯이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느니라." 그는 알거지가 되어 수치 속에서 살다가 수치스럽게 죽을수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다 그를 어리석고 고집불통이며 거느릴 수 없는 자로서 멸시합니다. 징계를 싫어하면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과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서로 돕고 격려하며 사랑으로 보증하며 함께 사는 훈련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훈계를 받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훈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훈계를 받을 때의 태도입니다. 진실된 사랑과 염려에서 나온 친구나 이웃 선배 지도자들의 훈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훈계를 싫어하는 보응을 스스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어떤 일정한 목표를 가 지지 않고 여기저기 헤매기 때문에 요구를 이루지 못합니다. 미련한 자는 아무리 지혜를 땅 끝 까지 찾아보아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봐야 합니다. 홍해를 앞두고 모세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사는 방법입니다.
  결국, 미련한자의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미련으로 징계를 받습니다. 지혜는 그 소유자에게 상급을 가져옴 같이, 우매는 그 소유자에게 죄를 가져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미친 개 에게는 몽둥이 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징계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미련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사람은 그의 친구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미련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로 선해지고자 하는 이들은 선한 교우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선해지기를 원한다는 증거가 되며(사람들의 특성은 그들이 선택하는 교우로써 알 수 있다), 선하게 만드는 방편도 되고 선한 길을 제시하고 그 길로 행하도록 촉진하며 격려하는 수단도 되는 까닭입니다. 지혜롭기를 바라는 자는 지혜로운 자와 함께 동행 해야 하며 그런 자를 자기의 지기로 택해야 하고 그에 따라 그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행악자와 사귀는 자들은 타락하여서 망하게 되고 결국 그 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일반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과 같이 우리는 동료를 항상 삼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고집으로 의에서 멀리 떠나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우매 자와 교제해서 배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교제 대상은 믿는 성도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웃는 반열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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