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축복(3장 3절-4절)

by 양재천목사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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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한 마을에 존 부스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한 형과 비교를 당하며 자랐고, 부모님께 야단을 맞을 때면 늘 ‘나는 못나서 그렇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형은 매사에 일을 잘 처리하는 모범생이었고 나중에 아주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항상 그런 형에 대하여 많은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늘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아주 유명한 사람을 죽이면 나도 유명해지겠지?’ 그래서 그가 죽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주저함 없이 링컨 대통령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한 시대가 낳은 훌륭한 위인을 죽였던 그 청년의 동기는 바로 명예에 대한 어이없는 탐심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명예란 무엇일까요?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명예가 곧 목숨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명예’와 ‘교만’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예’는 욕심이 아닙니다. 존중받는 일입니다.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인격을 인정받고 존중받는 일입니다. 이것이 명예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명예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명예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가지게 되면 ‘교만’이 됩니다. 남들보다 무조건 뛰어나야 하고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끝없는 욕망은 ‘교만’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교만의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관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누려야 할 참 명예는 헛된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죽을 목숨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이것보다 더 귀한 존재의미는 없습니다. 그리고 비록 세상의 대단한 권세가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아껴줄 때 찾아오는 자존감은 왕의 권력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중받는 인생이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복된 명예임을 지혜자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3절 말씀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사람은 누구든지 인자한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에게는 늘 사람이 따르게 됩니다. ‘인자’는 곧 ‘자비’입니다. 자비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으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까지도 다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항상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각박하고 인색함으로는 결코 세상의 사람들과 구분될 수 없습니다.
 
  이 ‘인자’와 함께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은 ‘진리’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좋기만 하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삶에 분명한 가치와 기준이 없이 그냥 사람만 좋으면 그것이 바로 ‘대책 없이 좋기만 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에 쉽게 동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자칫 모호해질 수 있는 우리 삶에 분명한 길과 해답을 제시해줍니다. ‘좋은 성품’과 ‘바른 삶의 기준’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귀한 가르침을 목에 매며 마음 판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의 가정교육 ‘쉐마’의 교육방법과도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 삶에 깊이 배어날 수 있는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케사르’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온 세계를 정복한 로마의 전성기였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손을 흔들며 열렬하게 환호했습니다. 이때 케사르는 번쩍거리는 면류관을 벗으면서, ‘겨우 이것이 전부냐? 도대체 이게 무엇인데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생명을 바친단 말이냐?’라고 말했습니다. 사슴이 노루나 다른 짐승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뿔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 도망을 가야 할 때 넝쿨과 나뭇가지에 가장 걸리기 쉬운 것이 또한 그 뿔입니다.
 
  진정한 명예는 세상의 헛된 영광을 위해 더 가지고 쌓고 꾸미고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자’와 ‘진리’의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회복하게 될 때, 바로 거기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 39장 말씀을 보면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혀 기뻐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는 상황 가운데 놓여있는 요셉에 대해 성경은 "형통하였더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니 형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답의 모든 성도들이 바로 요셉이 누린 이런 특권과 권위와 명예를 누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인자를 드러내는 삶, 형통하게 되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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