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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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 기자는 믿음에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과의 다른 점입니다. 야고보서 1:2에서 “내 형제들아”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상에서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교제가 있는 관계를 뜻합니다. 주인과 종, 평민과 귀족이라는 신분의 벽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예수 안에서 한 형제가 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교제는 예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미 세상적 시류에 물든 사람은 대체로 겉과 속이 다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외모로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14절의 “믿음이 있노라 하고” 이 말씀처럼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한 자신의 믿음에 대해 과대평가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믿음은 믿음 그 자체가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8절에서는 ‘최고의 법’은 이웃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 법임을 말하며, 12절에서는 자유의 율법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행함이 없으면” 이라는 말씀은 ‘8절과 12절에서 얘기한 이러한 법을 예수 안에서 형제라고하면서도 행함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말입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고 속은 심판 받아야 할 죄인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경건은 구제를 뜻했고, 구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표시로 여겨졌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의를 위한 사랑의 행위가 없는데도 과연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기자는 묻고 있습니다. “능히 자기 자신을 구원하겠느냐” 형제들을 도와주는 이웃사랑이야말로 구원의 의를 얻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구제가 그 사람의 심판의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행함을 강조합니다. 반면, 바울 사도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됨을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것’ 이것은 마중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아니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위에서 붓는 물과 같은 이 마중물처럼 믿음이 더 큰 믿음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복음의 의를 깨닫고 경건, 구제, 긍휼과 순종 같은 성화의 삶을 이끌고 이것이 사랑으로 표출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사랑이 모든 것들 중에 제일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강도당한 사람을 만났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선행을 말하고 구제를 가르치며 경건을 강조했던 그들이 이처럼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들 자신이 행함이 없는 사람임을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사랑에 참여하였고, 직접 도움을 주었고 행동으로 동참하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유익을 주었던 ‘최고의 법’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17절의 말씀은 이와 같은 믿음에 대해 분명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듯 죽은 믿음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라고 했습니다. 내게 아무리 훌륭한 은사가 있고 재능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백 마디의 말이 아닌 단 한 번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실천의 행동 또한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생각과 판단에 의한 의식적 행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바로 그와 같이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사랑이 없는 자라면, 실천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천이 없는 자라면 그는 아직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바로 행동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실천, 믿음의 삶에서 날마다 은혜를 경험하기를 축원합니다.